6월이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오늘이 6월 12일 금요일! 지금 시각은 몽골 울란바토르 현지 시각으로 늦은 오후다. 오늘 현재 몽골 현지에서는 총 197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상황이다. 몽골 현지의 첫 확진자는 지난 3월 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항공기로 몽골에 입국했던 프랑스인이었고, 그 이후부터 오늘 현재까지 이 프랑스인 1명, 터키인 3명, 몽골인 193명 등 현재 총 197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상황이다. 방금, 즐겨 마시는 커피가 다 떨어져서 커피를 사러 울란바토르 동네 구멍 가게에 갔다가 사과가 먹고 싶어 사과까지 집어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동네 구멍 가게 여주인 말씀이 이 사과인즉 체코 (Czech) 사과란다.

체코? 수도가 프라하인 체코? 예전의 체코슬로바키아였다가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분단된 나라? 그런데, 이 체코 사과가 어찌하여 이 몽골 울란바토르라는 이역만리(異域萬里)에서 해 뜨는 동쪽 대한민국에서 온 이 백면서생(白面書生)의 손이라는 사생결단(死生決斷)의 단애(斷崖)에 서고 만 것일까? 이 사과의 삶이 참으로 기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나는 내 비타민 C 섭취를 위해 이 사과를 먹고 말 것이다. 어차피 몽골 울란바토르가 외국이라는 점은 사과나 나나 마찬가지 아닌가.


체코는, 6.25사변 휴전 이후, 휴전 상황을 감시할 목적으로 설립된 중립국 감독위원회(中立國監督委員會=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NNSC)의 4개국 중 한 나라였다.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임무는 정전(停戰) 협정문 41조에 적혀져 있다: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임무는 본 정전(停戰)협정에 규정된 감독, 감시, 시찰 및 조사의 직책을 집행하며 이러한 감독, 감시, 시찰 및 조사의 결과를 군사정전(停戰)위원회에 보고하는 것이다.” 정전(停戰) 협정에 따라, 중립국 감독위원회는 4개의 국가로 구성됐는데, 2개의 중립국은 유엔군 사령부에서 지명하였으며, 2개의 다른 중립국은 북한 인민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에서 지명하였다. 이들 중립국은 6.25사변에 가담하지 않은 국가 중에서 선별되었으며, 유엔사령부 측에서는 스웨덴과 스위스를, 중국 인민지원군과 북한 인민군 쪽에서는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를 택했었다. 한편, 체코슬로바키아의 해체 이후에 두 나라로 갈라진 신생 국가인 체코와 슬로바키아 모두 북한 측의 감독위원 자격을 승계하지 않아 사실상 폴란드만이 북한 측의 감독위원회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 측에서는 이마저도 축출 조치하여 폴란드는 본국에서 이 업무를 형식적으로만 맡게 돼버렸다. 현재 대한민국 측에만 스웨덴과 스위스 위원이 각각 5명씩 주재하고, 북한 측에는 어느 국가의 위원도 주재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체코 사과가 몽골로 오려면 어떻게 오는 걸까? 아마, 국제열차로 체코 프라하=>러시아 모스크바=>러시아 울란우데=>몽골 울란바토르로 오지 않을까? 지구촌 코로나19 사태로 몽러 국경은 봉쇄됐어도 화물은 통행되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그러면 이 사과는 도대체 언제, 어떤 경로로 몽골에 온 거지?

열 개나 되는 체코 (Czech) 사과를 깨끗이 씻어서 손수 접시 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으니 보기가 좋았다. 봄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다. 나는 일단 사과 한 개를 깎아서 부드럽게 입에 밀어넣고 아삭아삭 씹었다. 새콤하고 달콤한 과즙이 풍성한 사과 맛을 원했으나 이 체코 사과는 그냥 퍼석하고 텁텁하기만 했다.


6월에 들어 거의 모든 몽골 대학 캠퍼스가 방학에 들어간 모양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거의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틈틈이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들어가 고국 소식들을 챙겼고 각 장르의 고국의 문학 작품들을 읽으면서 지냈다. 체코 사과를 깎아서 씹으면서, 대한민국의 이문열 (李文烈, Lee, Moon-yul, 1948 ~ ) 소설가가 지난 1981년에 발표한 한국 단편 소설 '사과와 다섯 병정(Apples and five soldiers)'을 떠올렸다.

한국 단편 소설 '사과와 다섯 병정(Apples and five soldiers)'은, 1979년 <사람의 아들>로 제3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문열 (李文烈, Lee, Moon-yul, 1948 ~ ) 소설가가, 그 2년 뒤인 1981년에 발표한 소설로서, "6.25사변의 상처를 안고 가는 한국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내용으로 담고 있다.


대체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6.25사변 통에 부모를 잃고 산사(山寺)에서 스님의 보살핌 속에 성장한 한 젊은이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밝혀 내기 위해 어머니를 찾아 가는 과정에서, 비몽사몽 간에, 사과를 먹고 있는 다섯 명의 국군 병사들과 마주친다. 이 때 이문열은 한 명의 국군 병사의 눈빛을 심상치 않게 묘사하면서 그가 젊은이의 출생 내력과 연관이 있다는 암시를 준다. 이문열은 6.25사변의 상처라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이 젊은이가 출생의 비밀을 추적해 가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 나간다. 과연 이 다섯 명의 국군 병사들과 젊은이는 어떤 관계이며, 젊은이는 자신의 부모를 만날 수 있을까? ‘사과와 다섯 병정’을 읽으면 6.25사변이 남긴 상처와 남북 분단에 대하여 새삼스레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요컨대, 6.25사변 때, 배가 고픈 다섯 명의 국군 병사들이 전투 현장 부근의 강가 과수원에 들어가 사과들을 몰래 따 먹다가 그 중 한 국군 병사가 몸이 불편한 과수원 집 딸과 짧은 사랑을 나눈다. 이 다섯 명의 국군 병사들은 적군인 북한 인민군의 총에 맞아 비참하게 죽지만 과수원 집 딸은 원하지 않던 임신으로 이 한 국군 병사의 아이를 낳게 된다. 그 아이가 바로 이 젊은이다. 이 젊은이는, 비몽사몽 간에, 이 다섯 명의 국군 병사들을 만나고 그들의 정체를 궁금해한다. 다섯 명의 국군 병사들 중 한 명이 자꾸 이 젊은이를 그윽하게 바라보다가 사라진다. 결론은 그들 중 한 명의 국군 병사가 이 젊은이의 죽은 아버지였다. 세월이 흘러 성장한 아들(=젊은이)을 만난 늙은 어머니(=과수원 집 딸)는 이 다섯 명의 국군 병사들에 얽힌 옛 이야기를 들려 주고 홀연히 세상을 떠난다.

[KBS 문학관] 사과와 다섯 병정(兵丁)

이 ‘사과와 다섯 병장’이라는 단편 소설 내용에는, 6.25사변 때 적군인 북한 인민군에게 총살 당한 다섯 명의 국군 병사들이 귀신(鬼神)이 돼 떠도는 상황이 등장한다. 하지만, 원래 내용은, 전투 현장을 무단 이탈한 다섯 명의 국군 병사들을, 북한 인민군이 아닌, 같은 편 아군 국군 헌병대가 사살하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죽은 이 다섯 군인들은 국군 병사들이었고, 6.25사변 때 치열한 낙동강 방어선에 투입돼 밤마다 거세지는 적군인 북한 인민군의 마지막 공세를 참호 속에서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엔군의 융단 폭격으로 적군인 북한 인민군의 공세가 뜸한 낮 시간에 잠시 전선을 빠져 나와 참호 부근의 과수원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부실한 보급에 배가 고팠거나 입대 전의 장난기가 발동해 풋사과 서리를 나왔거나 했을 터이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이 다섯 명의 국군 병사들은 풋사과들을 실컷 따 먹고, 전투복 주머니와 알철모에 남은 사과들을 가득 담아 과수원을 나오다가, 때마침 전쟁 감독 임무를 띠고 전선 후방을 순찰 중이던 같은 편 국군 헌병대(憲兵隊)에 적발됐다. 이 다섯 명의 국군 병사들은 과수원 앞 강변 아까시 숲 속으로 끌려들어가 ‘전선 이탈과 민폐(=전시 약탈)’의 죄목으로 같은 편 국군 헌병대(憲兵隊)에 의해 즉시 총살되었다. 그러니까, 이 ‘사과와 다섯 병장’이라는 단편 소설 내용에서는, ‘이 국군 병사들이 역시 같은 편 국군 헌병대(憲兵隊)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팩트(fact)다.

그러나, 이 ‘사과와 다섯 병장’이라는 단편 소설이 출간되던 1981년에, 이 소설 내용을 사전 검열(檢閱)한, 1980년대 초 서슬 퍼렇던 당시의 보안사(保安司)가, “대한민국 국군이 어떻게 아군 병사들을 죽일 수 있나? 또는 아군 병사들이 어떻게 대한민국 국군에게 죽을 수 있나? 대한민국 소설에서!”라고 제동을 걸었고, 이 소설 작품 당장 빼지 않으면 이게 실릴 (이문열의) 중-단편 소설집 1쇄 3판 납본 필증을 내줄 수 없다!”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결국, 이문열은, 이 국군 헌병들을 몰래 낙동강을 건너온 적군인 북한 인민군 정찰조로 바꾸고, 국군 헌병 복장으로 변장한 이들이 그 다섯 국군 병사들을 몰살시킨 것으로 소설 내용을 고쳐서 발간할 수밖에 없었다.


뒷날, 2018년 3월, 이문열은 그 당시의 자신의 속내를 이렇게 밝혔다. “원래 이 단편 소설의 소재는 6.25사변 때 심한 열병(熱病) 때문에 멀리 피난을 가지 못해 낙동강의 지류인 금호강(琴湖江) 강가의 과수원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9월의 유엔군과 국군의 반격과 북진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넷째 이모의 목격담(目擊談)을 통해 착안한 것이었다. 다섯 명의 국군 병사들이 아군인 국군 헌병대에게 총살된 사례가 진기한 상황인데다가, 그들의 원통한 죽음이나 사무치는 한(恨)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괴기성에 착안해, ‘어셔가(家)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미국 작가 에드가 앨런 포의 공포 소설)’ 같은 단편 소설로 쓰고자 구상해 보았다. 죽은 지 수십 년이 넘는 해 8월 하순 한낮까지 그 현장을 떠도는 그들 다섯 유령(幽靈)들을 불러내어, (드라마 ‘전설의 고향’ 같은) 구태의연한 옛날식 괴기(怪奇)나 환상(幻想) 분위기가 아닌, 비정하고 가혹했던 지난 6.25사변의 일면을 돌이켜 보고자 하는 게 원래 의도였다. 그런데, 1980년대 초 당시의 보안사(保安司)가 소설 내용에 대해, 갑자기, ‘아군의 비정한 자해(自害)나 자학(自虐)을 폭로(暴露)한 꼴이 아닌가’라는 지적을 가하면서, 이 소설이 폐기(廢棄)될 판이니 섬뜩하고도 황당(荒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그 국군 헌병대를 몰래 침투한 적군인 북한 인민군 정찰조로 바꿀 수도 있긴 하나, 그 변화된 상황에 대한 배경 묘사는 얼마나 군색(窘塞)한가? 그렇게 되면, 세 명의 적군 북한 인민군 특수조와 다섯 명의 국군 병사들 간의 전투로 인한 조우(遭遇)는, 비정규적이기는 하지만 교전 쌍방 간의 상전(相戰)에 지나지 않게 되고, 그 다섯 국군 병사들의 죽음은 값싼 정훈(政訓) 교재 이상의 교훈과 감동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아울러, 그런 그들은 수십 년이 넘도록 원통함이나 한스러움으로 이 세상을 떠돌게 될 것이었다. 결국, 밤을 새는 교정 작업이 진행됐고, 그런 교정 작업은 탈고의 홀가분함은커녕 부질없고 무망한 작업 뒤의 피로와 탈진을 내게 선사했다. 더욱이, 그 시각 이후 이어진 그 이상의 개고(改稿)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집필 작업이 되면서, 글쓰기가 점점 더 깊이 질척한 근대적 감시와 처벌의 구조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느낌에 나는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참으로 나쁜 때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어쩌면 연좌제보다 더한 새로운 감시와 처벌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그런 강박에 억눌렸다.


결국, 지난 2016년, 이문열은, ‘이문열 중단편 전집’ 개정판을 새로 출간하면서, “수십 년을 억울해하면서 지내기엔 체질에 잘 맞지 않다”라는 이유로 이 소설의 내용을 원래대로 되돌려버렸다.

올해가 6.25사변 70돌이 되는 해이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북한이 남북 간 통신 연락선을 모두 폐쇄했다고 한다. 반면, 유엔사령부와 북한군 간 직통 전화는 그대로 놔 두었다고 한다. 무슨 저의일까? 미국 쪽에서는 “북한의 통신 연락선 폐쇄는 한미 동맹 분열이 목적”이라고 보고 있는 모양이다. 남북 관계가 70년 전 6.25사변 당시로 다시 회귀한 듯하다. 마치, 과거 70년의 역사가 공중 분해된 듯한 느낌인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6.25사변 발발 70돌이 되는 지금 2020년 6월 이 시각! 6.25사변 발발 이래 자그마치 70년이다.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에 나오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의 준말 '고희(古稀)'가 70세의 세월을 뜻하고, 이것이 인간의 한평생에 해당할진대, 그야말로 한평생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외치는 민족이 동서고금에 있었던가? 참으로 한스러운 세월이다.


"6.25사변의 상처를 안고 가는 한국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숨을 쉬고 있는 이문열 소설가의 한국 단편 소설 '사과와 다섯 병정(Apples and five soldiers)'에 등장하는 "그 한(恨)이 지난 시대의 눈먼 증오에서 비롯된 거라면 새로운 증오로는 풀지 못한다. 그 시대의 광기(狂氣)에서 비롯된 거라도......역시 새로운 광기로는 풀 수가 없을 거야......."라는 문장이 지금 이 시각 내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기회가 된 김에, 이문열 소설가가 지은, 한국 단편 소설 '사과와 다섯 병정(Apples and five soldiers)' 원문(1981년 판)을 아래에 굳이 기록으로 남겨 둔다. 그러나 저러나, 지구촌 코로나19 종식은 아직 멀었나 보다.

이문열 소설가(왼쪽)와 캐나다 동포 민초 이유식 시인(오른쪽)이 이문열의 집필실이 있는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자리를 같이 했다.

☞[단편 소설] 사과와 다섯 병정(兵丁) / 이문열 / 8월의 따가운 햇살 아래 마을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정지해 있었다. 짙은 녹음 사이에서 매미들이 요란스레 울고 있었지만, 그 요란스러움마저도 전혀 잡것이 섞이지 않은 상태여서 오히려 정적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런 마을을 멀리 바라보면서 그는 야릇한 감개에 젖어 들었다. 27년 만의 귀향 -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그것은 귀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낯선 곳으로의 새로운 진출이라는 편이 옳았다. 그는 태어난 지 사흘도 안돼 그곳으로부터 버림받았고, 그 뒤로는 그런 마을이 세상에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채 어느 외딴 산사(山寺)에서 자라났기 때문이었다. 허드렛일과 목탁 소리 속에 잔뼈가 굵어 가는 동안 그 역시도 자신의 출신 내력이나 부모가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그걸 물을 때마다 핏덩이 같은 자신을 받아 길러 왔다는 조실(祖室) 스님은 모호하게 대답하곤 했다. "너는 그저 불자(佛子)니라. 하늘과 땅이 네 어버이니라." 그런 조실 스님의 태도는 그가 군에 입대하게 되었을 때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복무 기간 동안 세속의 생활을 맛 볼 대로 맛 본 그가 전역과 함께 환속을 들고 나서자 비로소 일러 주었다. "무슨 인연에 끌리어 그러는지 알 수 없다만 말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한 번 너를 버린 그 땅이 다시 따뜻이 맞아 줄 것 같지 않구나. 언제든 다시 돌아오너라. 산문(山門)은 항상 열려 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한번 끊어졌던 세간과의 인연을 이어 주었다. 즉 그가 버림 받은 땅과 그를 버린 어느 신심(信心) 깊은 마나님을. 그러나 그녀가 왜 약간의 논밭까지 곁들여 수백 리 떨어진 산사에 한 칠일도 안 난 그를 맡겨야 했는지 조실 스님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처음 그런 얘기를 듣게 되자 그는 오히려 그 땅을 찾는 일이 망설여졌다. 거의 본능적으로 자신의 숨겨진 출신 내력 속에서 어떤 불륜과 치욕의 그림자를 감지한 탓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어쩔 수 없었다. 한 사문(沙門)으로 삼보(三寶)에 의지하든 범부(凡夫)로서 세간을 살게 되든 그 땅은 그가 한 번은 반드시 찾아야 할 유연(由緣)의 땅이었다. 찾고 있는 참봉댁 과수원의 위치는 마을과는 좀 떨어진 강가의 산부리 아래였다. 그 과수원과 강둑 사이에는 울창한 아까시 숲이 싱싱한 초목의 향기와 함께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는 그 아까시 숲 사이로 난 폭 좁은 도로를 따라 들어갔다. 우마차나 경운기가 간신히 드나들 정도의 폭이었는데, 곧게 나 있어 멀리서는 산 밑 과수원의 탱자 울타리와 목재 대문이 보였다. 그런데 원인 모를 감동과 설렘에 젖어 그리로 다가가던 그는 돌연 한 떼의 이상한 인물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요즈음도 저런 군인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남루한 차림을 한 다섯 명의 사병들이었다. 위장포도 씌우지 않은 양철모에 계급장도 명찰도 분명치 않은 너덜너덜한 군복, 군화는 한결같이 진흙투성이인데다 형편없이 긁히고 찢어진 것이었다. 얼굴은 더욱 심했다. 며칠이나 세수를 안 했는지 기름때로 번질거리는데다 불쑥 솟은 광대뼈나 충혈된 눈은 그들의 예사 아닌 피로와 굶주림을 나타내고 있었다. 함부로 자란 수염이나 눈썹 위에 하얗게 앉은 먼지 - 거기다가 하나는 마치 허기진 사람처럼, 철모에 담긴 아직 새파란 사과를 정신 없이 씹어대는 중이었다. 그는 갑자기 까닭 모를 전율에 빠져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이 탈영병이거나 또는 그보다 더 끔찍한 범법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추측 이상의 어떤 섬뜩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그를 개의치 않고 자기들의 길을 갈 뿐이었다. 둘은 풋사과를 가득 싼 군복 상의를 어깨에 메고, 둘은 역시 풋사과 불룩한 양 호주머니를 어루만지며, 그리고 하나는 여전히 아귀아귀 풋사과를 베어 먹으면서. 그러다가 그들과 엇갈릴 무렵 그는 다시 한번 일층 강도 놓은 전율을 경험했다. 한결같이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 사과를 씹고 있던 사병이 잠시 날카로운 눈길로 그를 쏘아본 탓이었다. 일행 중에서 가장 앳되고 차분한 얼굴이었는데, 그 눈에는 뼛속까지 한기를 느끼게 할 만큼 차고 그윽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들은 별 일이 없이 그를 지나쳐 갔고, 왠지 뒤가 꿀린 그가 잠시 후 다시 돌아보았을 때는 벌써 강둑 너머로 사라진 후였다. 그도 이내 그들을 잊고 말았다. 어느새 그 앞에 다가와 있는 칠이 벗겨진 나무 대문과 무거운 정적 속의 고가(古家)가 그를 새로운 성질의 긴장과 흥분 속에 빠뜨렸기 때문이었다. 대문은 반쯤 열려 있었지만, 집안은 텅 빈 듯, 가까운 과수원 아래로 사람의 그림자는 비치지 않았다. 다만 늙은 개 한 마리가 툇마루 밑에서 졸고 있다가 머뭇머뭇 들어서는 그를 보고 게으르게 눈을 떴다. 그러나 별로 짖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 귀만 한번 쫑긋하더니 이내 스르르 눈을 감아 버렸다. "계십니까?" 그는 손수건을 꺼내 땀도 없는 이마를 문지르며 목소리를 가다듬어 주인을 찾았다. 예상대로 대답이 없었다. 몇 번 더 불러본 후에 그는 마침 가까운 나무 그늘에 놓인 살평상을 보고 그리로 갔다. 거기 앉아 담배라도 한 대 피우면서 주인을 기다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미처 살평상에 가 앉기도 전에 그 집 한구석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요?" "주인 되시는 분을 뵙고 싶습니다만......." "지금 들에 나갔으니 나중에 봐요." "아뇨, 기다리죠. " "멀리서 온 모양인데, 그럼 안으로 드세요. " 그러나 여전히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도대체 그 목소리의 임자가 어디 있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어디 - 계십니까?" "마루로 올라와서 곧장 왼편으로 돌면 돼요. " 그는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어 망설이다가 시키는 대로 했다. 집안은 겉에서 보기보다 훨씬 넓었다. 마루의 유리덧문이나 일본식의 내부 구조로 보아 그리 오래된 집이 아닌데도 낡은 고가(古家)로 느껴지는 것은 손질을 하지 않아 퇴락한 탓인 듯했다. 굵지 않은 나무 기둥과 창틀이 군데군데 꺼멓게 삭아 있었고, 회벽에도 여기저기 얼룩이 보였다. 발자국을 떼어 놓을 때마다 마룻바닥이 요란스럽게 삐걱거렸다. 그 목소리가 말한 대로 마루 왼편 구석에 문이 열려 있는 방이 하나 눈에 띄었다. 마당 쪽의 창문 곁에 낡은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목소리의 임자는 누운 중년의 여자였다. 그녀는 반듯하게 누운 채로 조그만 손거울을 통해 들어오는 그를 시종 비춰 보고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그녀가 마음대로 놀릴 수 있는 것은 두 손뿐인 것 같았다. "어떻게 오셨지요?" 그가 방에 들어서는 것을 보며 여인이 여전히 억양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난감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자신을 설명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이로 보아 적어도 그녀가 핏덩이 같은 자신을 절로 보냈다는 그 마나님은 아닌 듯 했지만, 그 집과의 관계를 확실히 모르는 이상 함부로 말을 꺼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난감함은 이내 그녀에 의해 사라졌다. 손거울을 통해 가까이 다가오는 그를 찬찬히 살피던 그녀가 갑자기 놀라움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표정으로 떨며 물었다. "젊은 양반, 이름이 혹시......만서(萬恕) 아닌가?" "그렇습니다만....." 그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상좌승조차도 모르는 자신의 속명(俗名)을 알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완전히 정상을 잃은 그녀의 눈동자 때문이었다. 대답을 들은 그녀는 신음 같은 흐느낌과 함께 두 팔을 미친 듯이 허우적거렸다. "아이구, 내 새끼야, 네가 살아 있었구나, 결국 돌아왔구나......" 어느새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도 갑작스런 감격에 휩싸여 파리하고 야윈 그녀의 두 손을 마주잡았다. 처음 그녀를 대할 때부터 이상하게 가슴 깊이 닿아오던 예감이 마침내 적중한 셈이었다. 참으로 다행스런 것은 그 오랜 궁금함과 그리움과 원망 대신, 그리고 당장의 낯섦과 서먹함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바로 자기 어머니란 사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었다. 조금 과장하면 그저 어디 긴 여행에서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몸을 떨며 흐느끼고 있었다. "돌아올 줄 알았다. 내 아들아....암, 돌아오고말고......" 그리고 손을 놓은 그녀는 다시 맹렬하게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그를 안으려고 애썼다. 그도 차츰 콧등이 시큰하고 목이 메어 왔다. 그는 별다른 마음의 준비 없이 거의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혀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처음 맡는 냄새였지만, 분명 긴 유년의 꿈 속에서 맡았던 바로 그 어머님의 냄새였다. 끝내 그의 볼에도 두 줄기 눈물이 타고 내렸다. 잠시 후에 다시 마음을 가다듬은 그는 조용히 그녀의 품을 빠져 나가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이제야말로 오랜 의문 - 자신의 출생 내력을 알아볼 차례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본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궁금증을 억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신열과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있었다. 숨결마저 듣기조차 괴로울 만큼 거칠어졌다. 그러나 입만은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쉴새 없는 물음들을 쏟아 놓았다.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가, 지금은 무얼 하며 앞으로는 또 어떻게 할 작정인가, 몸은 건강한가, 결혼은 했는가 등등. 그가 그런 물음에 띄엄띄엄 대답하고 있는 사이에 들에 나갔던 외삼촌 부부가 돌아왔다. 중년의 평범한 시골 농부들이었다. 그들로 보아 그 집이 자신의 친가는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난생 처음 핏줄기를 대하는 감격은 여전했다. 그러나 그들 부부가 그를 대하는 폼은 전혀 뜻밖이었다. 어머니의 감격에 찬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들 부부의 표정에서는 원인 모를 악의와 냉담이 시종 떠나지 않았다. 그가 애써 말을 붙여도 깍듯한 존댓말로 자신들과 그의 관계에 대한 부인을 대신했다. 한가지 뚜렷한 것은 그의 출현이 도무지 영 성가시다는 기색뿐이었다. 거기다가 더욱 알 수 없는 일은 그들도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점이었다. 과도한 흥분으로 기력을 소모한 어머니가 끝내 혼절하듯 잠들어 버린 후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외삼촌에게 자신의 내력을 물어보았다. 실망스럽게도 대답은 이러했다. "하도 오래 되고 - 또 그 때는 내 나이 어린데다가 - 워낙 비밀로 처리된 일이 되어서..... 어머님께서 주관하셨지만 이미 돌아가셨고 - 누님은 통 말씀이 없으셨으니...." 진지한 표정으로 보아 외삼촌은 적어도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외삼촌이 약간 굳은 얼굴로 이런 부탁을 해 왔을 때도 그는 별 저항감을 느끼지 않았다. "젊은이가 이렇게 찾아온 것이나 누님의 태도로 보아 굳이 우리 관계를 부인하려는 건 아니지만, 남들에게는 비밀로 해 주시오. 이곳은 우리 집안의 삼백 년 세거지(世居地)요. 누님은 처녀로 깨끗이 늙은 걸로 되어 있소. 거기다가 - 물론 젊은이야 무슨 죄가 있겠소만 - 아버님과 형님이 돌아가시고 집안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젊은이의 출생 때문으로 알고 있소. 지하에 계신 아버님과 형님을 위해서라도 젊은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심정을 이해해 주시오." 결국 늘어난 것은 의문뿐, 모든 것은 여전히 그의 어머니가 실마리를 쥐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밤늦도록 그는 어머니의 침대 곁에서 기다려 보았으나 그녀는 밤새도록 고열과 신음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이튿날도 그의 어머니는 깨어나지 못했다. 외삼촌의 청으로 면(面)의 공의까지 다녀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간간 의식이 회복되어도 기껏 그녀가 하는 일은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불덩이 같은 손으로 그의 두 손을 꼬옥 잡는 것이 전부였다. 신경에 과도한 자극을 피하라는 공의의 주의가 아니더라도, 도무지 무엇을 물어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외삼촌 내외는 그런 그들 모자의 주위를 불안스러우면서도 못마땅해 하는 침묵으로 맴돌았다. 오전 내내 그런 답답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보낸 그는 점심을 먹자마자 강가로 나갔다. 어머니가 얼마 전부터 혼수상태에 가까운 잠 속에 떨어져서 굳이 곁을 지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람 한 점 없는 후텁지근한 병실에서, 그것도 답답하고 어색한 분위기에 눌려 기다리기보다는 시원한 강물에 몸이라도 식히고, 앞으로의 거취나 생각해 보는 편이 옳은 일이었다. 그러나 강물에 한동안 몸을 식힌 후 아까시 그늘에 앉아 이것저것 생각에 잠겨 보았지만 도무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자신의 출생에는, 막연히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어둡고, 경우에 따라서는 참혹하기까지 한 이면이 있음이 분명했지만, 하룻밤 새 그의 궁금증도 몇 배나 가열돼 있었다. 그 끔찍한 비밀로부터 도망치고 싶기는커녕, 그것을 알기 전에는 앞으로의 삶을 한발도 내디딜 수 없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잠시 후 결국 그는 나올 때나 별반 다를 바 없이 막연하고 우울한 기분으로 과수원을 향했다. 그런데 그 아까시 숲 사이의 길에서 그는 또 어제의 그 군인들을 만났다. 모든 것이 어제와 똑같은 것이 묘하게 섬뜩했다. 남루한 복장에 지치고 허기진 표정, 거기다가 둘은 여전히 사과를 가득 싼 군복 상의를 메고, 둘은 사고로 불룩한 것임에 틀림없는 양 호주머니를 어루만지며, 그리고 하나는 철모에 가득한 사과를 열심히 씹으며.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들과 엇갈릴 때 사과를 씹던 그 사병이 어제보다 좀 더 오래, 그리고 더 깊고 그윽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는 정도였다. 그 자신도 어제와는 달리 세찬 전율 속에서도 왠지 낯익고 친밀한 느낌이 들어 한동안 마주 바라보았다. 전날의 기억보다는 훨씬 잘 생긴 얼굴에 왼쪽 이마의 꽤 깊게 파인 한 줄기 상처가 새로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가 돌아오니 과수원은 조용했다. 외삼촌 부부는 보이지 않고 늙은 개만 졸고 있었다. 그러자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러 가지로 보아 그들 다섯 명의 군인들은 분명 그 과수원에서 사과를 얻었을 텐데, 과수원에서는 전혀 그들이 다녀간 흔적이 없었다. 그들에게 사과를 팔거나 준 사람이 없는 것 같은 데다, 몰래 들어와 훔치기에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너무 높고 빽빽해 보였다. "뭘 그렇게 살피고 있니?" 그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병실 쪽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에 들어가 보니 어머니는 뜻밖에도 말짱하게 회복된 얼굴로 손거울을 들고 있었다. 그걸 보고 그는 불쑥 물어 보았다. "웬 군인들이죠?" "군인들이라니?" "방금 나간 사람들 말입니다." "아무도 오지 않았는데......" "어제도 다녀갔는데요. 사과를 사 간 것 같던데......" "사과를 사? 요즈음은 그런 풋사과를 팔지 않는걸." "외삼촌이 주셨겠죠." "외삼촌은 어제 오늘 건너 논에 농약을 치고 있어." "그럼 훔쳤나?" "그럴 리도 없어. 사방이 탱자 울타리로 막혀 있어 대문으로 밖에 들어올 수 없으니까. 도대체 몇 명이나 되던?" "다섯 명이었어요." "그럼 더욱 내가 못 봤을 리 없어, 어제는 하루 종일 손거울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고, 오늘도 네가 없어진 후부터는 줄곧 너를 기다리느라고 밖을 살폈으니까." "그래도 분명히 여기서 나오던데....." "이상한 일이다, 알 수 없어....." 그 말을 듣자 그는 더욱 그들 다섯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는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면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급히 나가 보았다. 그러나 아까시 숲길은 물론 멀리 강둑까지 뛰어가 보았지만 그들의 자취는 이미 찾을 길이 없었다. 강둑 위에서 이리저리 사방을 살피던 그는 가까운 원두막에서 한 늙은이가 담배를 태우고 있는 걸 보고 다가가 물었다. "할아버지, 이리로 군인들 지나가는 것 못 보셨습니까?" "군인들? 못 봤는데." "분명히 여길 지났을 텐데요." "몇 명이나?" "다섯 명이었습니다." "거참 모를 일이로군. 한둘도 아니고...... 이 근처에는 군부대가 없어. 어쩌다 휴가 나온 이곳 젊은이들이 있지만 한둘이 기껏이지. 다섯씩이나 몰려 다니다니......" "그렇다면 정말로 이상하군요. 어제도 보았는데." "어제도? 아닐걸. 나도 어제는 온종일 이 원두막을 지켰는데, 그리고 참봉댁 과수원에서 나왔다면 여기 앉은 내 눈을 피할 수 없어. 보아하니 어제 온 참봉댁 젊은 손님 같은데." "그럼 어제 제가 오는 것도 보셨습니까?" "물론 봤지." "그런데 저와 엇갈려 간 그들을 못 보셨나요?" "글쎄, 아무도 없었대도." "혹시 저 아까시 숲에 샛길이 있는 게 아닙니까?" "가다가 한번 들어가 보게나, 어찌나 나무들이 모질게 엉켰는지 들짐승도 뚫고 다니기 힘들 걸세. 어쨌든 잠깐 올라오게. 더운데 여기서 쉬었다 가시지." 그가 아직도 미진해서 머뭇거리다가, 재촉을 받고서야 마지못해 원두막으로 올라가자, 늙은이는 생각난 듯 강가로 내려가더니 샘 줄기에 채워 둔 수박 하나를 꺼내 왔다. 그러는 늙은이는 목발을 짚지 않는 게 용하다 싶을 만큼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다. 수박은 생각보다 훨씬 달고 시원했다. 그는 늙은이가 권하는 대로 사양 없이 받으며 이것저것 외가에 관한 것을 물어 보았다. 그가 늙은이를 통해 들은 것은 대강, 외가가 그 마을의 오랜 명문으로 가까운 조상에 참봉(參奉) 벼슬을 한 이가 있어 참봉댁으로 불린다는 것, 한때는 만석꾼이라고까지 했으나 살림은 그의 외증조부 대에서 대개 거덜나고 지금 남은 것은 그 과수원과 논 몇 마지기 뿐이라는 것, 그래도 인물들은 계속 났는데 6.25사변 통에 외조부 부자(父子)가 한꺼번에 없어지자 그나마 끝나고 말았다는 것 등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것은 외삼촌이 말한 대로였다. 그러면서 늙은이는 그의 정체에 대해 궁금히 여기는 눈치였으나 그는 굳이 자기를 참봉댁의 먼 친척으로만 둘러대었다. 외삼촌의 부탁보다도 이상한 방어 본능에서였다. 그런데 한동안 그런 저런 얘기를 들려주던 늙은이가 문득 무얼 생각했는지 고개를 기웃거리며 물었다. "참, 아까 그 군인들이 다섯 명이라고 했지?" "네, 분명 다섯 명이었습니다." "말이 났으니 얘기네만, 그 다섯이란 숫자가 묘하게 맘에 걸리는군." "어째서요?" 그러나 늙은이는 다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지. 이런 대명천지에. 아니야......" 그는 그러는 늙은이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뭐가 말입니까?" "아니, 아니 그저 갑작스레 옛날 일이 떠올라서." "무슨 일인데요?" 그렇게 묻자 늙은이는 다시 망설이는 눈치더니 드디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때 여기서 정말 참혹한 일이 하나 있었네. 바로 6.25사변이 난 해였지. 저 산 너머 큰 강을 두고 피아 간에 한참 치열하게 싸울 때였으니까 아마 이맘때쯤이었을 거야. 며칠을 버티다가 결국 국군이 남으로 후퇴하고 마을은 잠시 적 치하에 들어갔지. 바로 그 첫날 오후 늦게였어. 이미 적의 선발대가 저쪽 마을 국민학교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국군 다섯이 바로 이 앞 산마루를 타고 넘어왔네. 낙오병 같았는데, 그들은 강둑을 따라오더니 곧장 참봉댁 과수원으로 들어가더군. 나는 그 때도 이미 다리가 이 꼴이어서 역시 이 밭을 지키고 있었네. 지금처럼 수박이 아니고 강냉이였지만, 원체 피난민 등쌀에 견딜 수 있어야지. 어쨌든 그 바람에 나는 그들의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소. 그 때는 저 아까시 숲이 지금처럼 우거지지 않아서 더 잘 보였지. 참봉댁 과수원으로 들어간 그들은 한식경쯤 잠잠하대. 그런데 이런 딱한 일이 있나. 그들이 아직 과수원에서 나오기도 전에 적군 셋이 나타났어. 군관 하나와 졸개 둘이었지. 그들은 아마도 누구의 밀고를 받고 국군들에게 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야. 나에게 물을 것도 없이 바로 대문께로 가더니 탱자 울타리 곁에 숨어 기다리더군. 나는 조마조마했지만 어쩔 방도가 없었네. 거기다가 그들은 붙들려 봤자 포로니까 적어도 죽지는 않으리란 생각도 있었고. 적군이 그들 다섯을 앞세워 아까시 숲으로 들어갈 때도 나는 차마 죽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그 때만 해도 거기에는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니었네. 갑자기 몇 발의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적군들만 돌아오더군. 그 다섯을 모두 총살한 거야. 내가 보기에 그들 다섯이 대낮에 총도 없이 마을로 내려온 것은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인 것 같았네. 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시체를 묻으러 가서 보니 그 중 하나는 아직도 베어 먹다 만 풋사과를 꼭 움켜쥐고 있었어. 다섯 모두 꽃다운 나이였지. 어느 집 귀한 자식들이었는지.... 정말로 내 평생 다시 볼까 끔찍한 시절의 일이야. 피맛을 본 사람들이 모두 미쳐 있었던 게지. 그래 놓고도 저쪽은 무어라고 선전했는지 아나? 인민을 약탈한 자는 저희 편이라도 용서하지 않는다는 거야. 결국 그 풋사과 몇 개가 포로를 학살할 구실이 되어 준 셈이지. 설령 그보다 더한 짓을 했기로서니, 그 새파란 생명을 - 그것도 다섯씩이나......사상이 무언지는 모르지만 절대로 그런 게 아닐 거야. 사상 아니라 사상 할아비라도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어. 정말로 좋은 사상이라면 우선 사람부터 존중할 줄 알아야 해. 무슨 이유든 사람을 상해서는 못 쓰는 법이야......" 그는 서늘한 감동으로 그 늙은이의 얘기를 들었다. 늙은이는 수박을 한 입 베어 목을 축인 후에 계속했다. "한데 더욱 안된 것은 그 일로 죄 없는 참봉댁이 당한 수난이야. 그 집 맏아들은 일정 때 전문학교까지 나온 똑똑한 젊은이였는데 그 때 마지못해 민청(民靑)에 나가고 있었지. 마침 국군들이 그 변을 당한 장소가 참봉댁 앞이다 보니 그가 당연히 밀고자로 의심을 받게 되었어. 그 때문에 지레 겁을 먹은 그는 며칠 후 쫓겨가는 적군 틈에 끼어 월북해 버렸네. 그게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되어 국군이 들어오자 남은 사람들이 곤욕을 치르게 됐지. 참봉댁 어른은 아들을 잃은 상심과 그 때 겪은 고초로 이듬해 죽고, 둘째 아들은 견디다 못해 국군에 지원 나가 스무 살의 나이로 죽었어. 그 둘째가 죽자 마님도 곧 어린 막내와 병든 딸만 남겨두고 세상을 버리셨지. 그게 지난날 형세 좋던 참봉댁이 저렇게 망해 버린 경위야. 친척이라니 썩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닐 테지만 군인 다섯이란 말이 문득 그 일을 생각나게 해서...... 물론 젊은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고 - 따라서 아까 보았다는 그 다섯과는 전혀 무관하겠지만......" 그러나 그는 왠지 그들이 서로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오싹했다. 그는 수박물로 끈적이는 손을 수건으로 닦으며 일어섰다. "그럼 가 봐야겠습니다, 할아버지. 수박 잘 먹었습니다." 그가 까닭 모르게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뛰듯이 돌아가니, 어머니는 손거울로 밖을 내다보며 열심히 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래, 그들을 찾았니?" "아뇨, 벌써 어디론가 없어졌어요." "그럼 이리 와서 얘기를 다시 해 봐라. 다섯이라고 했지?" "왜 아실 것 같으세요?" "글세, 섬뜩하기는 하다만 어쩌면 그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라니요?" 그가 다시 이상한 예감으로 다그쳐 묻자 어머니는 잠깐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달콤한 어조로 말했다. "하여튼 그 다섯 병정의 얘기를 한번 더 해 봐라." 그는 자기가 이틀에 걸쳐 만난 그들 다섯에 대해 소상하게 얘기했다. 갑자기 듣고 있던 어머니의 얼굴에 짙은 의혹과 놀라움의 표정이 떠올랐다. "분명히 그들 같아, 혹시 너를 빤히 쳐다보았다는 그 사람 얼굴에 무슨 상처 같은 것 없디?" "왼쪽 이마에 무엇에 찢긴 것 같은 상처가 있었어요." "포탄 파편이 스친 거야, 확실히 그분이로구나......" 그녀는 혼잣말처럼 망연히 중얼거렸다. "누군데요?" 그가 묻자 그녀는 대답 대신 베갯잇 속에서 기름 종이로 싼 조그만 꾸러미를 꺼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펴서 그에게 내민 것은 끈 없는 군번 패 하나였다. 수 자리가 여섯 단위 밖에 안 되는 오래된 군번 패였다. "이게 그분의 것이다. 바로 너의 아버지다." 그는 멍한 가운데서도 명치 끝에 찬바람이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무렵의 며칠은 밤새도록 포 소리가 요란하고 앞산 등성이는 곧장 조명탄으로 환했었다. 그러다가 국군이 밀려가고 적군이 마을로 들어왔다는 소문이 들렸지. 그 이튿날이었어. 전날 형세를 살피러 내려간 네 큰 외삼촌과 사과 움에 깊이 숨은 둘째 외삼촌 외에도 식구들은 무엇 때문인가 집을 비워서 나 홀로 이 방에 남아 있었다. 스물 하나 때였는데 그 때도 나는 이미 카리에스(척추)로 이렇게 누워 지내는 중이었다. 전날 밤 잠을 설친 탓으로 대낮인데도 혼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그들이 들이닥친 거야. 분명 네가 말한 그들 다섯이었어. 얼룩이가 시끄럽게 짖어대는 바람에 밖을 살펴보니 그들 다섯이 홍옥(紅玉) 나무에 달라붙어 정신 없이 따먹고 있더구나. 그러다가 그 중 하나가 내 방에 들어왔어. 바로 네 아버지였다. 그분의 피를 받은 너에게 그분에 대한 욕된 얘기는 피하겠다만, 처음 그분이 이 방에 들어설 때 내가 두려움에 떤 것은 사실이었어. 그러나 때 묻고 상처 입은 그분의 얼굴에서 짓밟힌 젊음과 한때 수려했던 자취를 보게 되자 나는 왠지 그분이 가엾고 슬프게 여겨졌다. 그게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내가 그분을 별 저항 없이 받아 들인 이유였어. 결국 나는 네 외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능욕 당한 게 아니야. 그분도 그랬다. 그분은 시종 미안하고 안쓰러워하는 표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눈치를 채고 몰려온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나를 보호해 주었다. 그리고 이 군번 패를 끌러 놓았지. 더럽고 모진 목숨 그 비정한 전쟁에서 살아 남기만 한다면 반드시 나를 찾아올 거라고 했어. 물론 나도 들었다. 그들이 떠나고 오래잖아 아까시 숲쪽에서 나던 그 불길한 총소리와 그들이 죽었다는 소문을. 그러나 나는 왠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분은 절대로 죽지 않을 것 같았고, 그래서 꼭 나를 다시 찾아올 것만 같았다. 내가 이런 몸으로도 지금껏 목숨을 이어온 것은 우선 그분을 기다리기 위해서였어. 그리고 또 너 - 처음 내 몸 속에서 뛰는 너를 느꼈을 때 나는 오히려 기뻤다. 병든 내 몸에도 새로운 생명이 깃들일 수 있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과 나를 잇는 어떤 확실한 고리를 지니게 된 느낌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걸 오랜 외로움과 병고에서 온 일시적인 이상 심리라고 말했지만, 나는 끝내 너를 낳았어. 하지만 네 외가는 너를 용서할 수 없었다. 큰오빠의 월북이나 아버지의 죽음이나 동생의 자원 입대처럼 무엇이든 집안의 재난은 네 아버지와 그 일행에 책임을 돌리던 때였으니까. 거기다가 그들은 또 지켜야 할 가문이란 것이 있었지. 어머님은 아무도 모르게 너를 낳게 하고는 멀리 있는 재궁(齋宮) 부근의 절에다 몇 마지기의 위토(爲土)와 함께 너를 맡겼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나는 네 외삼촌에게 사정하여 그 절로 사람을 보내 보았지만 그가 가져다 준 소식은 네가 홍역으로 죽었다는 것이었지. 그러나 나는 역시 믿었다. 너 또한 어디선가 자라고 있고, 그래서 언젠가는 반드시 나를 찾아 오리라고. 그래 - 이제 너는 돌아왔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분도 - 결국은 돌아왔다......" 거기서 그의 어머니는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런 말을 마지막으로 길고 긴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병화(兵火)에 그을린 귀신은 원귀(怨鬼)가 되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아직 그들이 이 세상을 떠도는 것은 풀지 못한 한의 무게 때문일 게다. 그 한을 풀어 드리도록 해라. 하지만 그 한이 지난 시대의 눈먼 증오에서 비롯된 거라면 새로운 증오로는 풀지 못한다. 그 시대의 광기(狂氣)에서 비롯된 거라도......역시 새로운 광기로는 풀 수가 없을 거야......." 그리고 사흘 후 숨을 거둘 때까지 그녀는 끝내 깨어나지 않았다. 그동안 종종 그는 으스스한 기대로 아까시 숲길을 배회했지만 그 다섯 명의 군인들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흘 후, 그는 어머니의 하관이 끝나자마자 그곳을 떠났다. / 내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어떤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운수승(雲水僧)이었는데, 그 때 나는 무슨 괴기담(怪奇談)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생각한다. 그들 다섯이라면 30년 정도는 이 땅을 떠돌아도 좋다고, 그리고, 우연히 펼친 책갈피에서나 지나가다 마주친 나이 든 이들에게서 그 시대의 끔찍한 증언과 접하게 될 때, 또는 까닭 없이 잠 못 이루는 밤이나 주제넘게도 역사가 슬프고 한심스럽게 느껴질 때, 나는 또 생각한다. 항상 밝은 쪽에 아첨하기 잘하는 우리의 간사한 기억과 근시적인 이기와 번잡한 일상, 그리고 이 시대의 괴질인 불문(不問)과 타성 같은 것들에 가리워 잘 만나지지는 않지만, 그와 같이 이 땅을 떠도는 것이 어찌 그들 다섯뿐이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