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5월 7일 목요일에 참으로 오랜만에 겸사겸사 대학 캠퍼스로 출근을 했다. 하루에 4계절을 넘나드는 몽골의 봄 날씨인지라 두툼한 점퍼를 요즘 착용하곤 했으나, 그날은 양복을 걸쳐 입고 외출했다. 당연히 마스크는 입에 단단히 장착했다.




대학 캠퍼스로의 출근의 곡절을 굳이 기록해 두자면. 첫째는, 몽골 장기 체류 사증(몽골에는 영주권 제도가 없다) 연장 신청을 위해 몽골 노동부와 몽골외국인관리청에 제출해야 할 서류들을 대학 인사처(人事處)에 전달하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몇 년 전에 졸업한 어느 애제자의 한국 유학 준비에 필요한 담당 교수 추천서를 작성해 주고 직접 자필로 서명한 뒤 밀봉한 봉투 겉봉에도 역시 자필로 서명해 주기 위해서였다.


휴교에 들어 갔던 지난 1월말부터 장장 5개월이 지난 5월의 한낮! 캠퍼스 풍경은 그대로였고 몽골 현지 날씨는 화창했으며, 나뭇잎은 푸르디 푸르렀다. 푸른 5월! 부디, 바라기는, 향후 언젠가는 다가올 내 최후를 나는 이 5월에 맞고 싶다. 아니면 마는 거고!


대학 캠퍼스에 출근하자 마자 서둘러, 대학 인사처(人事處)에 서류들을 전달했고, 그 다음에 미리 시간 약속을 해 둔 애제자와 만나 한국 유학 준비에 필요한 담당 교수 추천서(근데 다른 교수들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내가 써야만 될까? 그것 참!)에 자필 서명해서 전달해 돌려 보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할 일이 끝났으니 서둘러 귀가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책상 앞에 눌러 앉았다. 바로 전날 온라인으로 실시한 내가 맡았던 여러 강의의 기말 시험 채점을 위해서였다. 5월 6일 수요일에 온라인으로 실시된 이 기말 시험 출제는 구글 폼즈(Google Forms)가 활용됐고, 나는 이 시험 문제에 비밀번호를 걸어 두고 애제자들에게 시험 시작 바로 직전에 비밀번호를 알려 줘 시험을 동시에 시작할 수 있도록 공정하게 조치한 바 있다. 집에서 채점해도 되는 일을 굳이 대학에서 할 필요는 없었으나 나는 그러고 싶었다. 왜냐. 유폐(幽閉=아주 깊숙이 갖힌 상태) 아닌 유폐 생활에서 내 밥줄(?)의 본거지로 돌아와 앉은 감회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詩)"를 떠올리며 차분하게 채점을 해나갔다. "한국어"라는 강의 외에도, "한국문학 번역"이라는 강의를 이번 학기에 진행했던 까닭이다.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아 //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 나는 무얼 바라 /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詩)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이번 학기가 얼굴을 보고 진행하는 강의가 아닌 온라인 강의로 진행됐던 까닭에 다소 후하게 학점을 산출해 내놓은 이 담당 교수의 애타는 심정을 애제자들은 알기는 알까? 먼훗날, 몽골 애제자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를 추억할 것인가?


바야흐로, 5월도 중순으로 접어든다. 고국은 어떤 모습일까?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통해 고국 뉴스, 관련 동영상을 시시각각 챙겨 보기는 하나, 고국과의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고국이 낯설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서울 이태원발(發) 코로나19 집단 감염!"이라는 뉴스와 "4.15총선 부정 개표 논란"이라는 뉴스가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런 가운데, 캐나다 한인 동포인 민초 이유식 시인(캐나다 민초 해외 문학상 창설자 겸 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이 멀리 캐나다 캘거리에서 "5월의 희망"이라는 자작시 한 편을 태평양을 가로질러 몽골 울란바토르로 보내 왔다. 고맙기도 해라!

[한국의 시(詩)] 5월의 희망

글 : 민초 이유식(李遺植, 1941 ~ )
발 췌 : Alex E. KANG

5월에는 푸른 하늘만 보이게 하소서
슬프고 괴로운 일은 구름 속에 날려 보내고
희망으로 나부끼는 바람만 불어 주소서

5월에는 꿈꾸었던 일들
이념과 위선의 탈을 털어 버리고
하나 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5월에는 그리운 사람들 만나
소주(燒酒)잔 꺾고 수육에 깨끗한 상추쌈으로
생의 환희를 섞어서 꼭꼭 씹어 먹게 하소서

5월에는 용기와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양 어깨 펴며 푸른 광야를 보고 마음껏 웃어도 보고
고뇌와 슬픔이란 먼 곳으로 보내게 하소서

5월에는 야생화를 우리의 가슴에 심고
연륜의 쳇바퀴와는 상관 없는 신비만 안고
그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5월에는 삶이란 이런 일 저런 일들이 있기에
희로(喜怒)를 달관하고 온정의 감사로 간직하며
기쁨으로 승화되는 강물로 흐르게 하소서

몽골인문대 한국학과 재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쾌척할 정도로 몽골에 관심이 많은, 외유내강의 전형 이유식 시인의 건투를 빈다.

5월 11일 월요일 현재 몽골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 42명! 하지만, 서울이면 어떻고, 울란바토르면 어떻고, 캘거리면 어떠한가!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고, 어차피 인생은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의 연속인 것을! "아! 창조, 발전, 자유 평등, 무궁한 진리!" 그렇다! 오늘도 지구는 돌고, 세월은 하염없이 흐르고, 몽골 현지에서의 한류 열풍은 계속 힘차게 박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