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부터 시작됐던 20013-2014학년도 1학기가 이번 주로 끝이 납니다. 이에 따라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재학생들도 다음 주부터는 학기말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한국학과 재학생들이 배우는 과목이 여러 개라 다음 주에 홀가분하게 다른 과목 시험을 치르라고 제가 맡은 과목은 이번 주에 시험을 치렀습니다.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3학년 재학생들이 이번 학기에 수강한 '한국어 의미론(Semantics)' 학기말 시험을 치르고 있다.
3학년 재학생들이 이번 학기에 수강한 '한국어 의미론(Semantics)' 시험을 위해 강의실에 들어갔더니, 이 3학년 재학생들이 갑자기 시험 바로 직전에 케이크를 강의실에 마련된 제 책상에 올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교수님, 생신 축하 (말씀) 드립니다' 하는 겁니다.
몽골 제 휴대전화 번호가 '****-1210'인 것을 보면 누구라도 짐작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해마다 12월 10일은 제 생일입니다.
솔직히 흐뭇했습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제가 감정이 풀어지면 시험 분위기가 개판(?)이 되는 건 불문가지입니다!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고 보면,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의 해결이 급선무였습니다.
일단, 목소리를 깔았습니다.
"뭐야, 이거! 누가 시험 보는 강의장에 케이크를 들고 오라고 했어! 앙?"
3학년 재학생들, 모르긴 몰라도 이 스승이 상당히 야속했을 겁니다. "스승 생일이라고 케이크 들고 왔는데,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정색을 해? 뭐 이런 스승이 다 있어?" 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어 의미론(Semantics)' 학기말 시험을 마친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3학년 재학생들이 생일을 맞은 강외산 교수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앞뒷줄 구분없이 왼쪽 제자부터) 돌람수렌, 게렐토야, 졸보, 간체체그, 솔롱고, 간토야, 강외산 교수, 엥흐후슬렌, 아리옹한드, 체체글렌, 투굴두르자야, 체첸바야르, 나란토야, (앞줄에 앉은 제자) 소욜마, 에르데네촐론.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3학년 재학생들이 이번 학기에 수강한 '한국어 의미론(Semantics)' 학기말 시험을 치르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웃으며, 제자들의 기지를 칭찬하며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케이크를 잘라서 같이 나눠 먹으려 했더니 이 제자들, 말하기를, "교수님, 학과 다른 교수님들과 나눠 드세요!" 이러는 겁니다.
결국, 이 케이크는 학과 동료 교수들과 같이 나눠 먹었습니다. 덕분에 교수단 사이에 12월 10일이 제 생일이라는 게 알려졌습니다.
오후 3시 10분, 시험 감독을 마치고 대학 캠퍼스를 나섰습니다.
누구나 맞는 생일입니다만, 식구들은 대한민국에 있고 저만 달랑 이역만리에 있다 보니 적적한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친분있는 몽골 주재 한인들한테 '오늘이 내 생일입네!'하고 떠들면서 잔치를 벌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제가 무슨 청춘 세대입니까?
"그래도 오늘 명색이 내 생일 아닌가! 미역국을 먹긴 먹어야 하겠지? 어디로 가지?" 한 순간 방황했습니다. 갑자기 회(膾) 한 접시가 당겼습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식당 미도리(Midori)로 가기로 결정하고 거기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회 한 접시 놓고 박 사장하고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누고 있는데 휴대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이번에는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4학년 재학생들이었습니다. '무지개 레스토랑'에 교수님 생일상을 차려 놓았으니 드시러 오라는 겁니다. "미리 귀띔을 하지, 너희들 하는 일이 항상 이렇지! 앙? 도대체 계획이라는 게 없어!" 대꾸는 이렇게 했으나 기뻤습니다. "그래도 곧 죽어도 스승이라고 챙겨 준다 이건데...그 녀석들 참!"
일식당 미도리(Midori)와 무지개 레스토랑은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박 사장에게 "곧 다시 오마!" 양해를 구하고 무지개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무지개 레스토랑에 모인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4학년 재학생들이 강외산 교수 생일상을 차렸다. (왼쪽 모자 쓴 제자부터) 게네, 볼로르촐론, 투무르바타르, 체렝한드, 강외산 교수, (선 학생) 아즈자르갈, 오란체체그, (앉은 제자) 울지바야르, 다시, 빌군. ※오찬 참석 제자들 중 뭉흐델게르, 냠도르지가 사진에서 빠졌다.
4학년 제자들이 한국 음식을 맛있게 들고 있다. 한식은 몽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국 음식이 되었고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시만 해도 한국 식당이 중국 식당에 비해 4배나 많다.
몽골인문대학교 한국학과 4학년 제자들이 강외산 교수에게 생일 선물로 모자(아직 딱지를 떼지 않은 상태임)와 목도리를 선물했다.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4학년 재학생들과의 오찬을 마치고 일식당 미도리(Midori)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박 사장 부인 민(閔) 여사가 미역국을 끓여 놓고 있었습니다. 진한 감동이 가슴 속에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제가 아무리 배가 불러도 미역국 한 그릇 더 못 먹겠습니까? 즉시, 밥 한 그릇을 말아 미역국을 뚝딱 비웠습니다.
일식당 미도리 민(閔) 여사가 손수 끓여내 온 미역국
일식당 미도리(Midori) 박 사장 부인 민(閔) 여사가 끓여 준 미역국을 비우고 나서 보니 제 휴대전화에 서울에서 발신한 생일 축하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90년대 애(愛)제자 체렝호를로(서울대학교 연구원)가 보내 온 생일 축하 메시지였습니다.
있는 제자 체렝호를로(서울대학교 연구원)가 보내 온 생일 축하 메시지.
결론적으로, 올해 12월 10일은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한참 전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산간 벽지의 문경보통학교에 발령을 받아 근무했던 어느 선생은 제자들로부터는 존경을, 학부모들로부터는 사랑을 받는 스승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나는 정녕 그러한가?"를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나는? 제자들로부터는 존경을, 학부모들로부터는 사랑을 받고 있는가? 정녕 그러한가?"
요절(夭折)한 어느 시인의 시를 떠올리며 제 몽골 생활의 지속적인 분발을 다짐합니다.
창문 커튼 너머로 몽골의 12월 11일 수요일 아침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1960~1989)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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