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체류 글모음

[고국 방문 글] 초등학교 동창들과의 즐거운 번개 만찬

alexalex 2016. 1. 17. 14:53

1월 16일 토요일 저녁 6시, 은평구 연신내로 나가, 동문 수학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 즐거운 번개 만찬을 같이 했다. 본 번개 만찬은 네이버에서 제작한 폐쇄형 SNS 밴드를 통해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본 만찬에는, 나를 포함해, 서울특별시는 물론, 인근 경기도 고양시, 수원시, 인천광역시를 포함한 수도권 지역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가나다 순서로) 김상기, 김윤경, 김혜영, 박덕수, 박수용, 심일동, 심재구, 원종석, 유운선, 유정혜, 이영미, 진성호, 한상원, 한현숙 등의 15명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만찬이 열린 연신내 소재 얼큰 버섯 만두 전골 식당 전경.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초-중-고-대 동창회 중에서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유난히 정(情)을 쏟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나도 예외가 아닌 곡절은, 철없던 유년 시절에 대한 아련한 동경(憧憬)이 가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동시에, 동문 수학했던 예전의 남녀 벗들이 바로 눈 앞에 실제로 등장해, 생글생글 웃고 있기 때문이리라.

▲(왼쪽부터) 현숙이, 영미, 혜영이.
 
▲(왼쪽부터) 나, 현숙이, 혜영이, 윤경이. 

▲몽골 현지에서는, “건배!”라는 용어로, “툴루(Төлөө=Tuluu=위하여)!”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토그토요(=Тогтооё=Togtooyo)!”라는 말도 있긴 하나, 이럴 경우에는 잔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

외국 체류로 인해 손쉽게 동창들을 만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나로서는 동창들의 따뜻한 환대에 그저 감격스럽고, 황송할 따름이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오는 1월 23일 토요일 출국을 앞두고 있는 나는, 연신내 네거리에 서서, "당신만 동창 있냐? 나도 동창 있다!"고 글썽글썽한 눈으로, 마구마구 외치고 싶었다. 위에서는 찍어누르고, 밑에서는 치고 올라오는 각박한 세태 속에서 내 초등학교 동창들을 어찌 잊을소냐!

▲기념 촬영을 하긴 했으나, 정작,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에 선, 나는 조명 때문에 얼굴이 하얗게 나왔다. 

물론, 일반적으로, 식당에서, 노래방의 필수 코스를 거치다 보면, 유치한 농담과 자극적인 말장난이 난무하기도 하고, 가끔, 부부싸움의 발단이 되기도 하는 게 문제이긴 하다.

따라서,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만을 위해 마련되는 동창 모임이라면, 허무감만 당연히 남을 것이고, 그 폐해(弊害=어떤 일이나 행동에서 나타나는 옳지 못한 경향이나 해로운 현상으로 생기는 해)는 고스란히 동창 개인 몫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건전성을 담보한 동창들 사이의 번개 모임의 개념 확립이 필요하다. 단, 이것은, 절대로 혼자 애쓴다고 가능한 게 아니고, 서로 서로 애써야 가능하다.

한편, 저녁 6시부터 만두 전골 식당에서 시작된 본 번개 만찬은, 역시 근처의 연신내 소재 2차 호프 집으로 이어졌다.
 
▲2차 '독도는 우리 땅' 호프 집 전경. 상호가 마음에 든다.

▲맥주에, 소주에, 우리들의 추억과 정(情)은 깊어만 갔다. 

3차는 은평구청 앞으로 자리를 옮겨, 라이브 카페에서 이어졌다.

▲3차 '라이브 카페'

▲3차 현장에 우리는 자리를 같이 했다. 

▲과일 안주가 먹음직스럽다.

▲우리의 대화(?)는 끊겼다가 이어지기를 되풀이했다.

▲소주병처럼 생겼는데 이름은 Scotch Blue였다.

▲한쪽에서는 노래가, 한쪽에서는 대화가 이어졌다.

▲(왼쪽부터) 혜영 여사와 현숙 여사가 귀갓길을 서두르고 있다. 부인이 엄동설한에 떨고 서 있지 않게 하려면 모피 코트가 필요하고, 모피 코트를 사 주려면 남편들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절감했다.

4차는 우동집에서 이어졌다.

▲4차 우동집 전경.

▲일부는 집으로 가고, 남은 우리는 다시 우동집에 모였다.

▲방금 뽑아낸 우동이 먹음직스럽다.

앞에 쓴대로, 저녁 6시부터 만두 전골 식당에서 시작된 본 번개 만찬은, 2차 호프 집, 3차 생음악 카페, 4차 우동집 등에 이르기까지, 무려 4차까지 이어졌으며, 나는 새벽녘이 돼서야 비로소 귀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작별을 했다.

중년(中年)의 의미를, 대한민국의 국어사전은, “한창 젊은 시기가 지난 40대 안팎의 나이”로 규정하고 있으나, 사회적 통념으로 보면,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로 봐야 옳을 것이다.

“무엇엔가 마음이 흐려지도록 홀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의미와, “하늘의 뜻을 안다”라는 지천명(知天命)의 의미를 곰곰이 곱씹어 보면, 사회의 모범적인 본보기가 되어야 할 중년들의 초등학교 동창회의 의미심장함은 극대화한다.

그러므로, 중년의 고뇌와 답답한 경제 현실을 서로 교감하며 곱게 늙어간다면, 그야말로, 명실공히, 보람에 찬 동창 모임이 될 것이며, 이런 동창 모임은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동창생들 간의 깊은 정서적 상호 교감을 지속해가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