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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alexalex 2014. 1. 28.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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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몽골 울란바토르=>몽-러 국경 통과=>나우슈키=>울란우데=>이르쿠츠크=>바이칼 호수로 이어지는 대장정 소화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기사입력  2014/01/28 [20:24]
【울란바토르(몽골)=브레이크뉴스 강원평창2018】
러시아에서 몽골로 무사 귀환을 서둘러 완료했다.
몽골 주변국인 중국과 러시아 등 2개국 순방 취재에 나섰다가 몽골로 급거 귀환할 수밖에 없었던 곡절은 "몽골 토요한글학교 교사 연수회 강의 진행을 위해 제발 빨리 돌아오라"는 누리 편지(이메일)를 통한 김은정 토요한글학교 교감의 특별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어질 뻔했던 정처없는 여정은 다음으로 미뤄지게 됐다. 오히려 잘 됐다 싶기도 하다. 다음 번에는 모스크바를 넘어 유럽까지 가 보겠다는 오기가 가슴에 충만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지 육신 멀쩡한 본 기자가, 조국 대한민국 정부가 적성 국가로 분류해 막지만 않는다면, 가 보지 못할 곳은 지구촌 어디에도 없다.

언젠가 이종수 대한한공(KAL) 몽골 지점장은 본 기자에게 "지구촌 여행은 하루라도 젊었을 때 하는 게 낫다"는 지론을 펼친 바 있다. 동감이다. 왜냐. 먼 길을 떠났다 무사히 돌아오려면 체력이 필요하기에, 체력이 고갈되면 아무런 감동 없는 여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중국, 러시아 순방 취재 여정을 소화하면서 긴장에 긴장을 늦추지 않아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몽골 귀환 직후부터 본 기자의 긴장이 풀어졌는지 피로가 도대체 가시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 아닌가! 사람의 몸은 무쇠가 아니다!

요컨대 지금 본 기자의 몸 상태로는, 러시아 입국부터 몽골 귀환까지 일일이 미주알고주알 상세한 설명을 덧붙일 여력이 없다. 하지만, 본 기자에게는 후세를 위해서라도 이번 이르쿠츠크 방문의 의미와 감동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이 있다. 이에 막중한 책임감으로 기꺼이 붓을 들었다.

몽골 주변국인 중국과 러시아 등 단순한 2개국 순방 취재 일정이었으나 워낙 영토가 넓은 광활한 대국(大國)들이다 보니 본 기자는 여유로움은커녕 항상 시간에 쫓기는 느낌으로 이리저리 이동에 이동을 거듭해야만 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1. 국제열차로 새벽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러시아 이르쿠츠크 역 청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본 기자의 러시아 입국 여정은 중국 얼롄=>몽골 자민우드=>몽골 울란바토르=>몽골 다르한=>몽골 수흐바타르=>몽-러 국경 통과=>러시아 나우슈키=>러시아 울란우데=>러시아 이르쿠츠크=>러시아 바이칼 호수로 이어졌으며, 러시아에서 몽골 귀환의 여정은 러시아 바이칼 호수=>러시아 이르쿠츠크=>러시아 울란우데=>러시아 캬흐타=>몽-러 국경 통과=>몽골 알탄볼라그=>몽골 수흐바타르=>몽골 다르한=>몽골 울란바토르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군사 작전에 버금가는 힘들고 험한 일정이었다.

국제열차로 1월 18일 토요일 오전 6시 15분(러시아 이르쿠츠크 현지 시각) 러시아의 이르쿠츠크(Irkutsk=Иркутск)에 도착한 본 기자는 뜬눈으로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이르쿠츠크 현지의 아침 분위기를 마음껏 향유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르쿠츠크의 하늘은 흐렸고 오전 10시가 넘어서도 해가 뜨지 않는 우중충한 분위기였다. 게다가 도착 첫날 오후에는 하늘에서 눈이 하염없이 내렸다. 그런 상황에서는 거리를 활보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기는커녕 기분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본 기자는 하는 수 없이 숙소인 앙가라호텔에서 러시아 도착 보도 기사를 작성하며 그렇게 우울한 분위기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눈은 내리고, 날씨는 춥고,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에 위치한 그야말로 동토의 땅임을 실감했다. 

다행히 도착 둘째 날에서야 하늘에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2. 러시아 이르쿠츠크외국어대학교 건물이 멀리 보인다. 도착 둘째 날 아침 숙소인 앙가라 호텔 객실에서 찍은 사진이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3. 러시아 이르쿠츠크 의회 청사가 멀리 보인다. 도착 둘째 날 아침 숙소인 앙가라 호텔 객실에서 찍은 사진이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본 기자는 한참 전 1990년대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가는 길에 이르쿠츠크와 바이칼 호수를 잠깐 돌아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극심한 긴장 속에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여정에만 정신이 팔려 있던 본 기자로서는 차분한 마음으로 이르쿠츠크를 돌아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도착 둘째 날 차분한 마음으로 이르쿠츠크 곳곳을 둘러 보았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4. 몽골 주변 2개국 현지 방문 취재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러시아 이르쿠츠크 의회 청사 정문 입구에서 포즈를 취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로마 가톨릭 코스텔 성당(Kostel Cathedral)이다. 폴란드 성도들이 세웠다고 하는데, 오르간 홀이 유명하다고 한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5. 폴란드 성도들이 세웠다는 로마 가톨릭 코스텔 성당(Kostel Cathedral)이 눈에 덮여 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보고야블렌스키 러시아 정교회 성당(Bogoyablensky Cathedral)이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6. 보고야블렌스키 러시아 정교회 성당(Bogoyablensky Cathedral) 전경.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본래 한 뿌리였던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가 갈라선 곡절은, 성모 마리아상, 예수 상을 제작하는 로마 가톨릭이 구약에서 금하는 우상을 제작한 것으로 간주한 그리스 정교회가 로마 가톨릭과 갈라서면서부터라고 역사는 전한다. 따라서 그리스 정교회에서 파생한 이곳 러시아 정교회도 일체의 동상 제작을 거부하고, 벽이나 천에 그린 그림으로 교회를 장식하고 있는 형국이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7. 보고야블렌스키 러시아 정교회 성당(Bogoyablensky Cathedral) 뜰에는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왔던 운명의 여인 라라(Lara)를 본 기자의 뇌리에 떠올리게 만드는 털모자, 털외투로 몸을 감싼 러시아 여인네들로 북적였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보고야블렌스키 러시아 정교회 성당(Bogoyablensky Cathedral) 뜰에는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왔던 운명의 여인 라라(Lara)를 본 기자의 뇌리에 떠올리게 만드는 털모자, 털외투로 몸을 감싼 러시아 여인네들로 북적였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8. 몽골 주변 2개국 현지 방문 취재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보고야블렌스키 러시아 정교회 성당(Bogoyablensky Cathedral)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로마 가톨릭 성당과 러시아 정교회 성당 탐방을 마치고 앙가라 강으로 이동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중심지이기도 이르쿠츠크의 앙가라 강변에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개통을 기념하고, 건설 도중 사망한 근로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9. 바이칼 호수에서 흘러나와 이르쿠츠크를 통과한뒤 시베리아를 거쳐 북극해로 흘러 들어간다는 아름다운 앙가라강(예니세이강 지류)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아 마시고 싶을 정도였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아름다운 앙가라강(예니세이강 지류)은 바이칼 호수에서 흘러나와 이르쿠츠크를 통과한뒤 시베리아를 거쳐 북극해로 흘러 들어간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10. 몽골 주변 2개국 현지 방문 취재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앙가라 강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11. 앙가라 강변에는 이르쿠츠크 도시 형성에 최초로 이바지한  코자크인 동상(The monument to the Cossacks)이 서 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이르쿠츠크 형성의 역사는 1652년 코자크 부대가 야영지를 앙가르 강 하류에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 이르쿠츠크는 도시로 등록되던 1686년까지만 해도 작은 도시였으나, 17세기 말부터 중국과 몽골로 통하는 무역의 관문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12. 몽골 주변 2개국 현지 방문 취재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이르쿠츠크 도시 형성에 최초로 이바지한 코자크인 동상(The monument to the Cossacks)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이어, 이르쿠츠크 시청 앞 키로프 광장(Kirov Square)으로 이동했다. 본 기자는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 얼음 썰매를 지치던 고국에서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마치 어린 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13. 이르쿠츠크 키로프 광장(Kirov Square)은 마치 동화의 나라 같았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어린 아이를 놀이 자동차에 태워 지극정성으로 밀어 주는 한 러시아인 부모를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평화로운 민족이 6.25 때 탱크로 한반도를 유린했던가?"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1983년 9월에는 대한항공(KAL) 여객기가 사할린 부근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의한 피격으로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 생각을 떠올리면 가슴에서 천불이 난다.

기억하시는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러시아(정확하게는 소련)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일갈했듯이, 대한민국에게는 이른 바 '악의 제국(Evil Empire)'이었다.

바로 그 악의 제국 소련(=러시아) 한 복판에, 꿈인지 생시인지 비몽사몽 간에 본 기자는 평화롭게 서 있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14. 키로프 광장(Kirov Square)에서 러시아인 부모가 아이의 자동차를 밀어 주고 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15. 몽골 주변 2개국 현지 방문 취재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키로프 광장(Kirov Square)에 세워진 2014년 새해 축하 얼음 조각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이어, 레닌 거리 5번지에 있는 이르쿠츠크 예술 박물관(Art Museum)으로 이동했다.

이 예술 박물관의 기원은 1870년대 돈깨나 만졌던 시베리아의 상인 블라디미르 플라토비치(Vladimir Platovich)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미술품들을 전시한 사설 미술관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한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16. 이르쿠츠크 예술 박물관에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예술 박물관에 본 기자가 군복을 입고 들어서서 그랬던 것일까? 예술 박물관 관리실장인 타티야나 B 여사가  경계하는 빛으로 본 기자의 앞을 막아섰다. 위 아래로 본 기자의 모습을 훑더니 대뜸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순간, '이것 봐라?' 했다. '그대 눈에는 내가 중국인으로 보이시오?' 맞받아 치고 싶었으나, 그렇다고 같이 무뚝뚝하게, 아니면 신경질적으로 맞대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에, 본 기자는 최대한 부드럽게, 최대한 공손한 어투로 러시아어를 구사하여 대한민국 국적임을 정중히 밝히고 기자증을 내밀었다.

그러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예술 박물관 관리실장인 이 타티야나 B 여사가 방긋방긋 웃어 주며 상냥한 말투로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었다.

본 기자의 그때의 느낌이란 러시아 현지에서 중국군 포로로 잡혔다가 대한민국 국군으로 다시 환골탈태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오오! 위대한 조국 대한민국이여!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17. 몽골 주변 2개국 현지 방문 취재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이르쿠츠크 예술 박물관 관리실장인 타티야나 B 여사 와 같이 포즈를 취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예술 관련 종사자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공통점은 (내면 세계는 내 알 바 아니고) 왠지 교양미가 팍팍 풍긴다는 점이다. 예외없이 이 타티야나 B 여사도 교양미가 팍팍 풍겨 나왔다. 하지만, 이 여자에게는 국제공용어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결국 본 기자는 졸지에 혀가 얼얼할 정도로 시종일관 러시아어로만 대화를 이어나가야 했다. 러시아어 익혀 놓지 않았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 했다.

그러고 보니 러시아 체류 기간 중 영어가 통한 곳은 애초에 숙소로 계획했던 이르쿠츠크호텔 한 곳뿐이었다. 뒤늦게 숙소로 잡은 앙가라호텔에서는 러시아 직원의 영어가 그야말로 덜그럭거렸다. 나의 사랑하는 러시아 국민들이여! 제발 국제공용어 영어를 배울지어다.

이 타티야나 여사 이름 뒤에 굳이 영문 B를 붙인 곡절은 본 기자가 러시아에서 타티야나라는 여성을 세 명이나 만났기 때문이다. 나중에라도 혹시 헷갈릴까 봐 편의상 붙인 이니셜이다. 세 명의 타티야나는 타티야나 A(몽-러 운행 국제열차 승무원), 타티야나 B(이르쿠츠크 예술 박물관 관리실장), 타티야나 C(개인 기업체 운영 울란우데 거주 여성) 등이다.

타티야나 C 여사는 조금 뒤에 나온다.

타티야나 B 여사의 따뜻한 배웅을 뒤로 하고 박물관을 나서서 눈이 내려 수북하게 쌓여 있는 눈의 도시 이르쿠츠크 거리를 하염없이 거닐었다. 그야말로 유럽풍의 도시였다.

이르쿠츠크는 '이르쿠트 강'과 '앙가라 강'이 서로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 '이르쿠트'는 힘센 사나이를, 앙가라는 '깊은 구멍'을 뜻한다. 그야말로 음양의 조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1860년 이르쿠츠크를방문했던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는 이르쿠츠크를 '시베리아의 파리(the Paris of Siberia)'라고 묘사했으며,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이르쿠츠크 출신의 러시아 시인 라스푸친은 프랑스 파리 시민들 앞에서 '우리 러시아에는 파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르쿠츠크가 있다!'고 일갈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온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18. 몽골 주변 2개국 현지 방문 취재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눈 내린 이르쿠츠크 거리에 추억처럼 섰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하지만, 이르쿠츠크에는 비극의 역사도 있다.

제정 러시아 말기에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Санкт-Петербург)에서 러시아의 개혁을 외치며 봉기한 실패한 혁명이 있었다.  바로 데카브리스트 혁명이다.  1825년 12월 26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원로원 광장에서 3,000명의 러시아 청년 장교들이 니콜라스 1세 황제 정권 전복을 기도했으나 처참하게 진압되고 만다. 청년 귀족 장교들과 젊은 지식인 그리고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이 혁명의 실패로 이들은 사형과 투옥 또는 우랄 산맥을 넘어 시베리아의 땅으로 유형 생활을 떠나게 된다.

이들은 수 년에서 수 십년간의 유형 생활을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이 이르쿠츠크(Irkutsk)로 모여들어 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 음악 연주 극장 등이 이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아름다운 앙가라강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이르쿠츠크 거리를 걷노라면 건축물 하나하나마다  그들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Санкт-Петербург)에 대한 향수와 유형 생활 동안의 애환이 서려있는듯 하다.  또한 이 청년 장교들의 부인들은 모든 귀족으로서의 권리들을 영원히 포기한다는 것을 각서로 쓰고, 그 부인들의 남편을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Санкт-Петербург)에서 우랄(Ural) 산맥을 넘고 시베리아(Siberia)를 가로 질러 이곳 이르쿠츠크(Irkutsk)에 당도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인들은 이 대장정의 중간에 시베리아의 벌판에서 생을 끝내고 만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부인들도 당도하자마자 숨을 거두는 경우가 많았으며, 또한 오랜 원정으로 인하여 병들어 오랫동안 병마와 싸워야 했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역경을 넘어 이르쿠츠크(Irkutsk)에 당도하였으나 이미 그 부인의 남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19. 이르쿠츠크에는 여성들을 위한 격투기 체육관이 운영되고 있었다. 한국 여성들도 호신용으로 격투기를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이르쿠츠크 예술 박물관(Art Museum)을 나와 개처럼 거리를 헤매던 본 기자의 발걸음은 레닌 동상 앞에 멈춰 섰다. 본명이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Улья́нов)였던, 레닌이 본 기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랬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에는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의 동상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었다. 따라서 지난 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몽골에서 철거된 레닌 동상이 지구상 유일하게 남아 있던 마지막 레닌 동상이었다고 호들갑을 떨던 국내외 언론의 보도는 명백한 오보인 셈이다.

동상 앞에 놓인, 눈에 파뭏힌 꽃다발이 이채로웠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20. 이르쿠츠크에는 레닌 동상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레닌 동무!, 그대가 꿈꿨던 위대한 공산주의 국가 실현은 황당무계한 한낱 부질없는 개꿈(empty dream)이었소. 그야말로, 허무하면서도 뼛속까지 공허한 한갖 헛된 망상(妄想)이었단 말이오! 그대의 공산주의 국가 모델의 영향을 받았던, 이오시프 스탈린, 호찌민, 마오쩌둥, 요시프 브로즈 티토, 김일성 같은 공산 도배 두목들은 이제 다 골로 갔소이다. 

그대를 추종한 공산 도배 두목들 중에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라는 인간이 아직도 이 세상에 있긴 하오만, 이 인간도 목숨이 오늘, 내일 한답디다. 그대의 그 허울좋은 이념 때문에 우리 한반도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1950년의 6.25사변이 일어났소이다.

우리 한민족이 6.25사변으로 인해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영광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임을 그대는 알고나 있으신지?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소이다. 혁명의 시대가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오고야 말았소이다. 과거 한 세기 동안 갈고 닦으며 키우고 기른 인도주의 정신이 이제 막 새로운 문명의 밝은 빛을 온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였소이다.

분명한 것은 혁명의 시대는 갔다는 것이오. 공산주의는 이제 옛시대의 유물일 뿐이오!  레닌 동무! 븨 미냐 빠니마예찌(Vy menya ponimayete=그대 내 말 알아 들었소?)"

본 기자의 발언의 요지를 레닌이 알아들었는지나 모르겠다. 아니면 말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21. 몽골 주변 2개국 현지 방문 취재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이르쿠츠크에 있는 레닌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거리를 걷다 보니, 아침밥을 먹는둥 마는둥해서 허기가 졌다.
즉시, 한국 식당 아리수(Arisu)로 이동했다.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겸해 허겁지겁 끼니를 때운 본 기자는 몽골 현지의 한국 식당의 음식맛이 이르쿠츠크 아리수 식당 음식 맛보다 분명히 한 수 위였음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이 기회를 빌려, 몽골 현지에서 한국 음식 전파에 애쓰고 있는 몽골한인외식업협회 최병산 회장을 비롯한 여러 회원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리는 바이다. 이건 결코 정치적인 발언이 아니다. 이르쿠츠크 아리수 식당은 한국 음식 조리에 더욱 정성을 기울여야 할 듯 하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22.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단 하나 있다는 한국 식당 아리수(Arisu) 전경.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이르쿠츠크 아리수 식당을 나와 이르쿠츠크 역 근처로 이동했다.
세계에서 제일 깊다는 바이칼 호수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역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서둘러 바이칼 호수 행 승합 버스를 잡아 탔다.
백두산이 한민족의 성지라면 바이칼 호수는 한민족의 시원으로 간주된다.

한참 전 1990년대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가는 길에 이르쿠츠크와 바이칼 호수를 잠깐 돌아본 적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사진 한 장 남아 있는 게 없었던 본 기자로서는 바이칼 호수로의 여정은 왠지 들뜬 느낌의 연속이었다.

바이칼 호수 유람기는 나중에 자세히 올릴 예정이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23. 이르쿠츠크에서 세계에서 제일 깊다는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가에는 눈 쌓인 자작나무 숲이 아름다웠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24. 이르쿠츠크 역 청사 부근에서 승합차가 출발한 지 정확하게 1시간 10분 만에 세계에서 제일 깊다는 바이칼 호수가 본 기자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25. 몽골 주변 2개국 현지 방문 취재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바이칼 호수를 배경으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26. 세계에서 제일 깊다는 바이칼 호수에서 서쪽으로 지는 해가 아름답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바이칼 호수를 둘러보고 몽골 귀환 작업을 서둘렀다.
몽골 토요한글학교 교사 연수회 강의 진행을 위해 "제발 빨리 돌아오라"는 누리 편지(이메일)를 통한 김은정 토요한글학교 교감의 특별 요청을 결코 거절할 수는 없었다.

즉시, 이르쿠츠크 역으로 이동해 울란우데 행 열차표를 끊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27. 세계에서 제일 깊다는 바이칼 호수에서 출발해 이르쿠츠크 역에 도착할 무렵 거리엔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바이칼 호수에서 우연히 만난 타티야나 C 여사가 동행해 주었다.

본 기자는 이 타티야나 C 여사를 바이칼 호수 지역에서 우연히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이 타티야나 C 여사 집이 울란우데여서 목적지가 같았다.

1990년대에 몽골 바가노르에 잠시 살았다던 중년의 이 러시아 여자는 해 뜨는 동쪽 대한민국에서 온 그저 단순히 외간 남자에 불과한 본 기자를 꼼꼼하게 챙겨 주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28. 몽골 주변 2개국 현지 방문 취재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바이칼 호수에서 우연히 만나 울란우데역까지 동행한 타티야나 C 여사와 같이 이르쿠츠크 역 청사에서 포즈를 취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예전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꼼꼼하다지만 이 타티야나 C 여사는 완전히 예전 우리나라 어머니들 꼼꼼함 뺨치는 수준이었다.

야간 열차에 같이 승차했는데 객실 승무원이 나눠 준 이불 보며, 베개 보가 제대로 침대에 장착됐는가를 일일이  챙겨 주었으며, 자리를 비울 때마다 가방 확실히 챙기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러나저러나 이 러시아 여자가 본 기자를 챙겨 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러시아어로 한-러 우호를 주제로 이런 저런 대화를 펼쳐 가는 걸 특이하게 본 걸까? 그래서 챙겨 주고 싶은 모성 본능이 발동한 걸까? 이것 말고는 이 여자한테 본 기자가 해 준 게 아무 것도 없다.

마치 영화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내 소싯적에 러시아어 배워 두기를 잘했지. 갑자기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이었다.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Доктор Живаго) : 노벨문학상 수상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지은 유명한 소설이다. 뒷날, 1965년 데이비드 린 감독이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을 바탕으로 같은 이름의 로맨스 전쟁 영화를 만들었고, 대한민국에서는 대영영화㈜에서 이 영화를 수입하여 상영한 바 있다.

<줄거리> "혁명 전쟁속에 피어난 한 사랑 이야기이다. 전쟁과 얼음의 땅, 러시아에는 거대한 전투의 소리와 위대한 사랑의 침묵이 있었다. 8세의 나이에 고아가 된 유리 지바고(Yuri)는 그로메코가(家)에 입양되어 성장한다. 유리 지바고는 1912년 어느 겨울 밤, 크렘린 궁성 앞에서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기마병에게 살해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 사건 이후 유리 지바고는 사회의 여러 뒷면들을 접하게 되고, 의학을 공부해 빈곤한 사람들을 돕고자 꿈꾼다. 그는 그로메코가의 외동딸 토냐(Tonya)와 장래를 약속하면서 열심히 의학 실습에 몰두하는데 운명의 여인 라라(Lara)와 마주친다. 라라는 자신의 어머니의 기둥 서방 코마로프스키(Komarovsky)에게 정조를 빼앗기자 사교계의 크리스마스 무도회장에서 코마로프스키에게 방아쇠를 당겨 총상을 입힌다. 유리 지바고는 다시 한 번 라라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그러나 라라에게는 혁명가 파샤(Pasha)라는 애인이 있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군의관으로 참전한 유리 지바고는 우연히 종군 간호사로 변신한 라라와 반갑게 해후한다. 1917년 혁명 정부가 수립된 러시아에서 유리 지바고와 같은 지식인은 제일 먼저 숙청될 대상이었다. 그래서 유리 지바고는 우랄 산맥의 산골 마을 바리키노로 숨어든다. 궁핍하지만 평화가 감도는 전원 생활을 보내다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시내 도서관을 찾은 그는 우연히 그 근처로 이주해온 라라와 다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유리 지바고는 애인 라라와 아내 토냐 사이를 오가면서 이중 밀회를 지속한다. 그뒤 빨치산에 잡혀 강제 입산을 당한 유리 지바고는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여 이리저리 방황한다. 그 후, 이복 동생의 도움으로 생활하던 중에 전차를 타고 가다가 걸어가고 있는 라라를 보고 내려서 황급히 뛰어가다 심장마비로 길거리에서 사망한다. 이것도 모르는 라라는 내란 통에 잃어버린 유리 지바고와의 사이에서 난 딸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시는지? 영화 촬영 배경은 러시아지만, 영화 장면은 핀란드 (겨울 장면)와 스페인 (여름 장면)에서 촬영했다지? "고로 영화 장면은 가짜다! .내가 러시아 현지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진짜 닥터 지바고다!" 본 기자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본 기자를 공박하고 싶으신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왜냐. 착각은 자유, 망상은 해수욕장이니까!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29. 몽골 주변 2개국 현지 방문 취재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바이칼 호수에서 우연히 만나 울란우데역까지 동행한 타티야나 C 여사와 같이 야간 열차 객실 안에서 포즈를 취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편, 본 기자가 탑승한 반(半) 침대칸 객실 건너편에는 러시아 20대 여성 두 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리나(Irina, 오른쪽) 양과 니나(Nina, 왼쪽) 양이었는데, 부랴트 족인 이리나 양은 이르쿠츠크외국어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었고,  슬라브 족인 니나 양은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었다.

부랴트족인 이리나(Irina) 양에게 중국어로 대화를 걸었더니 곧바로 중국어로 맞받아치는 것이었다. '오호! 그것 참 신기하네!' 한자 실력이 궁금해 이름을 한자로 써보라고 했더니 '伊琳娜'라고 써 보이는 것이었다. 글씨를 그리는 수준을 넘어 제법 한자다운 한자를 써 보이는 실력이었다.

두 여성 모두 대한민국에는 가 보지 못했다고 했다. 즉시, '한-러 간 단기 사증(査證=비자=Visa) 면제 협정'이 지난 11월 13일 대한민국을 방문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Влади́мир Пу́тин)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 기간 중 대한민국과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바 있음을 전제하고, 올해 1월 1일부터 발효가 됐으니, 대한민국 방문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을 역설해 주었다. 두 여성의 얼굴이 환해졌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30. 본 기자가 탑승한 반(半) 침대칸 객실 건너편에 자리를 잡은 이리나(Irina, 오른쪽) 양과 니나(Nina, 왼쪽) 양이 포즈를 취했다. 부랴트 족인 이리나 양은 이르쿠츠크외국어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었고,  슬라브 족인 니나 양은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이르쿠츠크 역에서 8시간의 이동 끝에 다음날 새벽 울란우데에 도착했다.
타티야나 C 여사와는 울란우데 역 청사에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 다음 여정은, 앞에 쓴 대로, 러시아 울란우데=>러시아 캬흐타=>몽-러 국경 통과=>몽골 알탄볼라그=>몽골 수흐바타르=>몽골 다르한=>몽골 울란바토르로 이어졌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후기 31. 이르쿠츠크 역에서 8시간의 이동 끝에 다음날 새벽 도착한 울란우데 역 청사 전경.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본 기자의 현재 몸 상태로는 러시아 울란우데=>러시아 캬흐타=>몽-러 국경 통과=>몽골 알탄볼라그=>몽골 수흐바타르=>몽골 다르한=>몽골 울란바토르로 이어지는 여정까지의 긴 이야기를 쓸 여력이 없다. 이에, 여기에서 일단 줄인다. 나중에 기회가 있을 것이다.
사증(Visa=비자) 없이, 한때 소련으로 불렸던 러시아 땅을 다시 밟았던 것은 참으로 두고두고 유쾌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한때 러시아 시인 마야코프스키가 10월 혁명의 감격 속에서 '보라, 그리고 부끄러워하라. 나는 소련의 시민이로라' 라고 노래한 것을 기억한다. 그러고 나서 100여년이 지난 지금 본 기자는  그 혁명의 빛바랜 이념, 그것이 갖고 온 경직된 체제, 그 모두를 바탕으로부터 바꾸는 또 다른 러시아의 혁명과 만나고 있다. 21세기의 러시아의 새로운 혁명은 신선한 이상으로 지구촌을 변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를 자유롭고 다원적인 민주 사회로 이끌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각 개인의 성취 동기는 각자의 행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이 지구촌 사회를 살아 움직이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활력이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대한민국보다 200배가 넘는 광대한 국토와 여기에 무한한 자원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달과 우주를 정복하는 첨단의 과학 기술과 세계 초강대국의 하나가 된 국력을 갖고 있다. 러시아에는 위대한 문학과 음악, 사상과 학문, 찬란한 러시아 문화를 창조한 힘과 높은 자질의 국민이 있다. 러시아 국민은 뭉친 힘으로 숱한 외침을 막았고 제1차, 제2차세계대전에서 러시아와 세계 문명을 지켰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가 되는 러시아 방문을 본 기자는 러시아 시인 푸슈킨이 노래했던 '기적의 순간'처럼 경이로 받아들인다. 왜냐. 한-러 관계의 정상화는 우리 한민족에게 그토록 큰 고통과 비극을 가져다준 냉전 체제의 종막을 뜻하는 것은 물론, 전쟁과 분단의 땅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재촉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과 러시아(옛소련 시대 포함) 사이에는 1990년 9월 30일 수교 이전까지 86년 간의 단절의 시대가 있었다. 왜냐. 식민 세력의 침략과 냉전 체제의 대결이 지구촌을 휘감았었기 때문이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즈음 미-러(정확히 말하자면 미-소) 두 나라는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른 북위 38도를 따라 분단 선을 그었다. 이 선이 남북한 우리 동포와 한-러 두 나라 국민 모두를 서로 가르는 높은 벽으로 굳어졌다.

한반도의 얼어붙은 휴전선을 마주하여 남북으로 갈라진 한민족 수백 만의 부모, 형제, 자매, 친척들은 서로 오갈 수도 없고 전화 한 통화, 편지 한 통 주고 받지 못했고, 그들의 거처나 생사마저 알 수 없었다.

한-러(정확히 말하자면 한-소) 두 나라도 서로 장벽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러시아(정확히 말하자면 옛소련)는 공산권 진영을 이끄는 나라로서,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진영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로 서로 반목, 대결하는 관계가 이어져 왔다. 이러한 대결 구도로 따라 거대한 러시아(정확히 말하자면 옛소련)는 작은 대한민국에 위협을 주는 나라로 인식되었고 대한민국과 러시아(정확히 말하자면 옛소련) 사이에는 불행과 불상사도 있었다.

러시아(정확히 말하자면 옛소련)의 스탈린 통치 시대에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든 6.25사변이 일어났고, 1983년에는 러시아(정확히 말하자면 옛소련) 공군기에 의해 우리 민간 여객기가 피격( 이 생각을 하면 피가 끓어 오른다)을 당한 바 있다. 이것은 냉전의 지난 시대에 빚어진 일의 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제 한-러 양국은 어두웠던 지난날의 불행을 딛고 이제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 가고 있다. 한-러 사이의 새로운 시대는 모든 나라, 모든 국민이 화해와 협력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려는 대한민국의 북방 정책과 페레스트로이카가 합치하는 공동의 철학에 바탕하고 있다.

교류의 길이 열리면서 두 나라 국민이 서로 오가고 있다.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 입장했던 러시아(정확히 말하자면 소련) 선수단은 대한민국 국민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서울 방문을 통해 이뤄진 볼쇼이 발레단과 레닌그라드 교향악단의 대한민국 공연은 그 뛰어난 예술성에 대한 갈채와 새로운 친구에 대한 기대로 성황을 이룬 바 있다.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모든 러시아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의 따뜻한 우의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를 찾는 대한민국 국민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 스스로 이번 러시아 방문은 위대한 국민, 위대한 문화와의 만남이었다.

한반도의 첨예한 대결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에 핵심적인 과제가 되어 왔다. 한-러 두 나라가 한반도의 얼음을 깨는 일은 이 지역에 평화와 협력의 질서를 촉진하는 관건일 것이다. 대한민국으로부터 일본, 동남 아시아와 호주에 이르는 태평양의 서안은 넘치는 활력으로 세계의 번영을 이끄는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는 세계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살며 세계 무역의 40퍼센트 이상, 세계 총생산의 50퍼센트 이상이 이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이 지상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았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방향은 분명하다.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남북한이 교류 협력하는 관계를 이루면 같은 민족 간의 화해는 빠른 속도로 진전될 수 있다. 남북한의  같은 동포 간에 오가는 길이 열리면 공동체 의식과 강한 결집력으로 평화 통일의 여건이 무르익을 것이다. 북한은 그들의 오랜 폐쇄 노선으로부터 나와 대한민국과는 물론 국제 사회와 협력하는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왜냐. 이 세계에 넘치는 개방과 개혁의 물결을 북한만이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러 우호 관계여! 영원하라!

<수교 이전의 대한민국-러시아(옛소련) 관련 일지>
▲1973. 06. : 소련, 국제연극협회 총회 및 유니버시아드 대한민국 관계자에게 첫 입국 허용.
▲1978. 04. : 항로를 이탈한 대한항공(KAL) 여객기, 소련 무르만스크 남쪽 200마일 빙판에 강제 착륙.
▲1978. 06. : 소련, 무르만스크 착륙 대한항공(KAL) 여객기 기체와 기장-항법사를 제외한 탑승자 전원을 송환.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특별 담화를 통해 사의 표명. .
▲1978. 09. : 신현확(申鉉碻) 보사부 장관, 대한민국 각료로는 처음으로 세계보건기구 총회에 참석차 소련 입국.
▲1979. 04. : 한-소 국제 전화 개설.
▲1982. 07. : 서울 국제의원연맹(IPU) 70차 총회에 앞서 사전 준비 차 소련국제의원연맹(IPU) 임원 코브리첸코 방한.
▲1983. 09. : 대한항공(KAL) 여객기 사할린 부근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의한 피격으로 탑승자 269명 전원 사망. 대한민국,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소련의 사과 및 보상 요구.
▲1988. 01. : 소련, 서울 올림픽 참가 공식 발표.
▲1988. 07. :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7.7선언-남북한 상호 교류-이산 가족 상호 방문 등 제의.
▲1988. 08. : 박철언(朴哲彦) 대통령 정책 보좌관, 극비 소련 방문, 수교 교섭 개시.
▲1988. 08~10. : 1988 서울 올림픽 관련 소련 영사단 체한.
▲1988. 09. : 그라모프 소련 체육부 장관 방한. 고르바초프, 크라스노 야르스크 연설.
▲1988. 10. :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유엔에서 동북아 평화 강조 연설.
▲1989. 03. : 최호중(崔浩中) 외무부 장관, 태국 방콕 아태경제사회위원회 총회 기념 리셉션에서 리가초프 소련 외무부 차관과 접촉.
▲1989. 04. : 소련상공회의소 서울 사무소 개설. 무역진흥공사 모스크바 사무소 개설.
▲1989. 06. : 김영삼(金泳三) 민자당 총재 소련 방문, 김현욱(金顯煜) 국회 외무부통일위원장 일행 사할린 방문.
▲1989. 07. : 모스크바에서 한-소 영사 관계 협의 제1차 회담.
▲1989. 10. : 루카시 소련 체육부 차관 방한.
▲1989. 11. : 싱가포르 한-소 영사 관계 협의 제2차 회담. 한-소 영사처 교환 설치 합의 정식 발효.
▲1989. 12. : 김집(金潗) 체육부 장관 소련 방문.
▲1990. 02. : 주모스크바 영사처 개설. 최호중(崔浩中) 외무부 장관, 한-소 외무부 장관 회담 제의.
▲1990. 03. : 공노명(孔魯明) 초대 주소련 영사처장, 모스크바 부임. 한-소 정기 항공 노선 개설 합의.
▲1990. 03. : 김영삼(金泳三) 민자당 최고위원, 박철언(朴哲彦) 정무 장관 등 고위 당-정대표단 소련 방문. 김(金) 최고위원,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면담. 수교 원칙 합의.
▲1990. 04. : 파누코프 소련 민간 항공부 제1차관 방한. 유종하(柳宗夏) 외무부 차관, 뉴욕 유엔 경제 임시 총회 참석 중 오브민스키 소련 외무부 차관 접촉. 아간 베갼 소련 대통령 경제 고문 방한.
▲1990. 06. :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첫 정상 회담.
▲1990. 06. : 한국무역협회 대표단, 모스크바에서 소련 상공회의소와 업무 협정 체결.
▲1990. 08. : 김종인(金鍾仁) 대통령 경제 수석 비서관, 소련 방문, 수교 및 경제 협력 문제 협의. 김종휘(金宗輝) 대통령 외교안보 보좌관,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도브리닌 소련 대통령 외교정책 보좌관과 단독 요담.
▲1990. 08. : 로엔그림 예피모비치 예레멘코 초대 주한 소련 영사처장 부임.
▲1990. 09. :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부 장관, 중국-북한-일본 3개국 순방.
▲1990. 09. :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한-소 수교 관련 최호중(崔浩中) 외무부 장관에 중요 지침 시달. 최호중(崔浩中) 외무부 장관, 유엔에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부 장관과 한-소 외무부 장관 회담 갖고 양국 수교 합의 의정서 서명.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alexkang12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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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ius, Altius, Fortius (Faster, Higher, Stronger)
<편집자주> 국제 회의 동시 통역사인 알렉스 강 기자는 한-몽골 수교 초창기에 몽골에 입국했으며, 현재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교수로서 몽골 현지 대학 강단에서 한-몽골 관계 증진의 주역이 될 몽골 꿈나무들을 길러내는 한편, KBS 라디오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으로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촌에 몽골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기사입력:  2014/01/28 [20:24]   최종편집:    ⓒ 2018breaknews.com



덧붙임 : 몽골로 귀환하자마자 얼큰한 음식이 먹고 싶어 홍길동 식당에 들렀다.
마침 그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김명기 전(前) 몽골한인회장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니, 강 교수! 몽-러 접경 지대에 있다는 소식은 이메일을 통해서 받았네만, 언제 이렇게 몽골에 왔는가?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니 마치 유령이 나타난 것만 같네! 허허허!"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부산 출신의 아무개 회사의 조 아무개 이사가 말을 이었다. "아니, 강 교수! 내가 말이요! 강 교수 러시아 간다기에 이번에 내가 부산에 가서 따뜻한 털 귀마개를 사 왔다 아닌교? 근데, 털 귀마개 안 갖고 갔데? 아니! 털 귀마개도 없이 어떻게 그 시베리아 추위를 건뎠는교?" 그러더니, 털 귀마개를 손수 내 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다. "아이고, 고마우셔라! 덕분에 이번 몽골의 한파 대비는 걱정 없겠네요!" 본 기자는 배시시 웃었다.
김명기 전(前) 몽골한인회장은 한 발 더 나갔다.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며, 먹고 싶은 것 지금 실컷 먹으라더니, 몽골 무사 귀환 기념이라며 본 기자의 잔에 귀환주를 한량없이 부어주는 것이었다. 그저 고마웠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같이 즐긴 홍길동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는 참으로 유쾌했다. 김 전(前) 회장은 기어이 자신의 지갑을 꺼내 본 기자의 음식값을 치러 주고야 말았다.

이 무슨 분에 넘치는, 황송한 복(福)인가? 아아! 이게 사람 사이의 정(情)이라는 것인가? "내 몽골 체류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나, 내 여기 있는 동안만큼은 몽골 한인 사회의 발전을 위해 더욱 분골쇄신하리라!" 본 기자는 새삼스레 그런 다짐을 했다.

다음날, 몽골 토요한글학교 교사 연수회가 열린 선진그랜드호텔로 서둘러 달려갔다. 이연상 몽골한인회장과 마침 그 자리에 와 있던 이석제 몽골한인회 사무총장의 말이 걸작이었다. "아니, 러시아에 가 있는 양반이 무슨 교사 연수회에 참석을 한다는 거야?"는 생각을 본 기자를 만나기 전까지 했다고 했다. 그저 배시시 웃어 주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도중에 박승우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교육 담당 서기관이 전화를 걸어 왔다. 교사 연수회 참석을 위한 본 기자의 러시아에서의 급거 귀국을 이미 알고 있는 박 서기관은 "교사 연수회  잘 끝났다"고 들었다며,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안부를 전해 왔다.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몽골 상황이지만 왠지 가슴이 따뜻해졌다.